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겉도는 규제완화/이재승(일요시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겉도는 규제완화/이재승(일요시론)

입력
1994.09.18 00:00
0 0

 경제학도들 사이에 『한국의 경제학과 미국의 경제학이 다르냐』는 비아냥거리는 농담이 오고갈 때가 있다. 서울에서 경제와 관련, 엉터리같은 주장을 할 때 하는 소리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같다. 같은 경제처방이라도 한미간에 약효가 전혀 다르다. 하나의 예가 규제완화(DEREGULATION)다.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신경제정책의 일환으로 규제완화정책을 추진해온지도 이제 약 1년6개월이 된다. 당초의 의도대로 기업과 시민들이 규제로부터의 해방과 그 이익을 느끼기는 커녕 경우에 따라서는 규제강화로 개혁에 역행하는 것같다. 이제는 정부의 규제완화추진 그 자체가 활력을 잃고 실속하고 있는 것같다. 문민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의 원조는 로널드 레이건 전미대통령(40대·81∼89년)이다. 레이건은 70년대 세계경제를 괴롭혀온 스태그플레이션(물가고속의 불황)을 치유하겠다고 레이거노믹스(레이건의 공급측면의 경제정책)를 요란스럽게 내놓았는데 규제완화정책은 감세정책·공무원감원정책과 더불어 3대축의 하나였다. 캘리포니아주지사를 8년동안 역임한 레이건은 연방정부의 관료체제에 시달렸던지 체질적으로 반연방주의자. 연방정부체제의 무수한 규정과 비대한 조직 그 자체를 미국경쟁력 저하의 주범으로 봤다.

 임기 첫 해(81년)에 그가 쾌도난마같이 철폐의 칼을 댄 것이 항공요금이다. 항공업계는 로비가 강한 이익집단이다. 공존공생하도록 복잡하게 요금체계가 짜여져 있었던 것. 나눠먹기식이었다. 이것을 완전자유화했다. 미국내에서 항공사간에 생사를 건 가격경쟁이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동서횡단 정기항공편의 편도요금이 6백여달러에서 3백달러로까지 절반이 떨어졌다. 심지어 비직행 비정규 야간항공편의 경우 1백50달러로 덤핑되기까지 했다.

 적자생존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쟁력이 약한자는 침몰했다. 한국등 아시아지역에서 잘 알려진 팬암항공사도 결국은 탈락했다. 살을 깎는 경영합리화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항공사의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업계는 생존의 경쟁을 했지만 소비자는 요금인하에 즐겁기만 했다. 업계와 소비자 모두 시장경제의 원리를 체감했다. 우리 문민정부의 규제완화정책은 지금까지 소리는 요란했지만 메아리가 없다. 한미간의 경제토양이 다른 데다가 접근방식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인 것같다. 

 정부가 지난 해 3월 규제완화에 착수한 이후 지금까지 시행한 건수는 모두 1천1백28건이다. 이 가운데 9백16건은 관계법령의 개정까지 마친 것이다. 또한 올해들어서는 통관·유통등 22개 분야별로 중점개선과제를 선정하여 1백68건의 관계법령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건수만을 늘려놓은 것같다. 규제완화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기업에 시간·돈등의 비용을 발생케 하는 규제를 될 수 있는대로 풀어 비용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자는 것이다. 지금은 취지가 우습게 됐다. 우리의 규제완화는 실패라고 말해도 좋을 것같다. 왜 그런가.

 우선 규제완화 수준이 서류간소화등 단순한 절차적 개선에 그치고 있고 본질적인 정책개선은 외면한 것이다. 예를 들면 소비자경품 가액한도를 「5천원 미만 구매에 5백원 이하」를 「1만원 미만, 1천원 이하」로 상향 조정했는데 경제기획원이 소비자경품가액한도까지 지정해줘야 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품경쟁으로 제품가격이 상승되는 것을 우려해서 관여하는 것같은데 이제는 이 정도는 업체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상호관련성있는 규제들이 일괄해제가 되어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비일비재하다. 시행령은 개정돼도 일선관서인 시·군의 관련조례의 개정이 늦어져 시행이 보류되고 있는 것도 많다. 놀라운 것은 일선 집행기관의 관련공무원들이 규제가 완화된 사실이나 내용을 몰라 규제의 관행을 되풀이 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행정규제완화가 출발점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은 청와대의 경제행정규제완화점검단의 조사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전기·전자업종의 경우 창업에 요구되는 규제수가 1백97개, 필요서류 5백47건, 연 소요일수 8백4일이나 된다고 한다. 규제완화의 주요 대상은 제조업인데 규제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규제완화의 혜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토지정책을 보존에서 개발로 전환함에 따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준농림지역, 군사보호지역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풀어놓기만 했지 개발계획과 연결시키지 못해 땅값만 올려놓고 땅의 효율적 이용도를 크게 떨어뜨려 놓고 있다. 규제완화정책은 용두사미가 돼가고 있다.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본질적인 개선이 돼야겠다.<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