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표현조차 강한 거부감/“건설비는 흑연로비용과 상계”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전문가 회의에서 북한이 밝힌 제의와 입장이 상세히 공개됐다.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정우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은 회담이 끝난 다음날인 15일 북한이익대표부에서 단독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회견에서 북한측의 제의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밝히지 않았으나 북한의 입장이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타협의 여지가 없어 일주일후 열릴 제네바 고위급회담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해주고 있다. 이번 회의가 어떤 합의나 결론을 내리는 자리는 아니었으나 그동안의 분위기를 볼 때 양측은 대부분 의제에서 상당히 대립, 논의가 별로 진전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김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경수로형의 선택문제였다. 그는 회견을 끝내면서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명백히 밝혀줄 것을 내외신 보도진에게 재강조했다.
북한의 입장은 우선 한국형은 안된다는 것이다. 김대표는 「한국형」이라는 표현조차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현재 한국형 경수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영광 3,4호와 이를 모델로한 울진 3,4호가 아직 조업조차 시작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이름을 지은 것같은 억지』로 비유했다.
그는 경수로형의 선택은 구매당사자인 북한의 권리임을 강조했다. 단지 누가 건설비를 댈것인가는 지난8월 제네바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대로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므로 한국이 참여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표가 말한 북한의 경수로조건은 안전성과 수출실적을 통한 성능의 검증이다. 그는 경수로 제작회사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독일의 지멘스, 프랑스의 프라마톰, 미국의 ABB컨버스천엔지니어링(ABB―CE), 일본의 미쓰비시를 열거하고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것은 지멘스와 ABB―CE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또한 『북한은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강조, 차관을 상환할 의도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 점은 북한이 건설을 동결키로 했던 50㎿와 2백㎿의 흑연감속형 원전에 대해 그동안 투입된 연구개발비와 건설비를 상환총액에서 공제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논리의 근거는 미래의 핵투명성 확보라는 이유로 미국이 플루토늄 생산의혹을 제기, 일방적으로 흑연감속형 원전의 건설을 중단토록 요구했다는데서 찾고 있다.
그는 흑연형 원전에 투입된 액수를 밝히지 않았으나 수십억 달러, 또는 경수로 건설비보다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2천㎿용량의 경수로 건설비는 약4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한푼도 상환하지 않겠다는 것과도 같다.
북한의 주장은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제네바테이블에서의 「거래」를 의식한공세적 차원으로 볼수 있다. 북한은 그들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미국과 한국측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네바회담의 성패는 경수로의 해법에 달려 있다. 【베를린=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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