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 황모사무관은 군경력을 포함, 공무원생활 20년을 훨씬 넘긴 40대중반의 중견공무원이다. 15일 아침 인천북구청 세금착복사건기사를 씁쓸하게 읽던 그는 서랍속에서 낡은 책자를 찾아 내밀었다. 공무원의 생활수기등을 담아 재작년 펴낸 책에는 그의 아내의 글이 실려 있다. 「이사」라는 제목의 짧은 수상은 「결혼이후 13년동안 열하고도 다섯번을 이사했다. 큰애는 다섯번 전학했고 둘째는 운이 좋아 두번만 전학했다」로 시작된다. 아내가 열여섯번째 이사를 준비하며 쓴 이 글에는 박봉에 전직 잦은 공무원생활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아니면 전세기간이 어긋물려 이사할 때마다 아이들이 사귀던 친구들과 헤어지게 만든 안쓰러움이 있었다…. 큰애는 전학인사에도 숙달이 되어 있다. 3학년때만 두번째 전학인사를 하고 있는 큰애의 모습을 교실창밖에서 보다가 눈시울을 적신 적도 있었다. 이사중에는 야윈 큰애 손목을 잡고 진눈깨비 속을 나서던 겨울철 이사도 있었고, 일주일만에 옮긴 일도 있었다」
「짐차가 떠나기 직전 가족들 모두가 비워놓은 아파트 안에서 한참이나 말없이 서 있던 기억도 난다. 출발 직전 둘째의 눈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도 보았었다. 그 이후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글은 생활의 어려움조차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이사할 때가 또 오고 있다. 아픔도 있었지만 감회도 많다. 대구에서 큰애를 업고 퇴근시간에 서성이던 후미진 아파트 입구, 봉천동 전셋집 입구의 생맥주집, 광주에서 배운 서예, 그리고 이제 낯익은 관악산 등산길도…」
황사무관은 16번째 이사끝에야 최근 산본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다. 50대도 있는 그의 사무실 직원 6명 가운데 집을 가진 이는 그뿐이다.
인천북구청사건이 난 뒤로 사무실분위기는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다. 비리관련자들은 동료공무원과 그들의 가족에게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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