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미대통령이 대외정책을 등한시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외교문제를 게을리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한달동안 범죄예방 법안의 의회통과등 국내문제에만 골몰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쿠바사태, 아이티문제, 르완다난민문제, 북한핵문제등 대외적인 현안들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다. 마치 이들 문제들을 무시해 버리면 그냥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잊혀져 있었다. 러시아의 핵물질이 계속해서 독일로 밀반입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를 때는 클린턴대통령은 어디에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대외정책에 대한 클린턴의 무관심은 곧바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뒷전으로 밀어놓은 냄비가 안보일때 끓어넘쳐 요리를 망치는 것과 같다. 그 지경에 이르면 요리는 말할 것도없고 사태를 수습하는데도 상당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최근의 쿠바난민사태는 대표적인 예이다. 클린턴대통령이 쿠바 난민탈출사태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을 때는 한창 일이 벌어진 지 열흘쯤 지나서였다. 그는 범죄예방법안의 의회통과와 의료개혁법안 성안등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모든게 잘되고 있으며 난민문제에 대처할 임시계획의 마련이 완료됐다는등 대통령의 정책을 선전하기만 급급했다. 조지 스테파로플로스 백악관보좌관은 나중에 범죄예방법안을 다루는데 너무 바빠서 쿠바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사실 백악관은 지난달 18일께 쿠바난민위기가 주요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했을때에도 이를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플로리다주의 로톤 차일스(민주)주지사는 몰려드는 난민들로 골치를 썩이다 못해 비상사태를 선포, 연방정부의 도움을 공식 요청했다. 이때도 백악관의 대응은 안일하기 그지없었다. 연방이민국 관리들을 더많이 플로리다주로 파견하고 주지사의 재정적 군사적 원조요구를 검토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클린턴행정부의 대쿠바정책은 처음부터 확고한 목표가 없었던게 틀림없다. 지난달 18일만해도 그렇다. 클린턴행정부는 이날 하오 늦게 허겁지겁 기존의 대쿠바난민정책을 뒤집었다. 재니트 리노법무장관은 썰렁한 백악관브리핑룸에 나타나 미국은 날로 확대되는 쿠바난민사태를 막기위해 탈출난민들을 억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클린턴대통령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아침의 긴급 고위정책회담에 참석조차 하지않았다.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도 나중에 이를 시인했다. 이 모임은 쿠바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것이었다.
클린턴행정부의 이같은 안일한 태도는 미쿠바간 난민협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미행정부는 단지 난민탈출만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쿠바인의 이민쿼터를 늘려준다는 식의 미봉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봉쇄해제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있다.
92년 냉전이 끝나고 미국민이 경기침체로 놀라 사색이 됐을 때 클린턴은 외교정책에 관해 거의 논쟁하지않고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부시전대통령이 냉전종식 주도와 걸프전 승리라는 괄목할 만한 외교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실패했다는 점을 너무 의식하고있는 것같다.
그들은 클린턴대통령에 관한한 재선의 열쇠가 국내문제 해결에 있다는 입장을 갖고있는 듯하다. 실제로 클린턴대통령은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그런 입장에는 반드시 대가가 뒤따랐다. 클린턴대통령의 지지율은 지금 역대 최악이다. 단지 미국민 세사람중에 한사람만이 그의 외교정책을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를 세계의 리더로서 생각하는 미국민은 절반도 안된다.
이런 최악의 지지율은 클린턴대통령에게 반성의 기회를 줄 것이다. 역대미대통령들은 외교정책을 다룰때 자신의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국내문제보다는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국내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은 까다롭고 여론에 민감한 의회와 대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허약해 보이기 쉽상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양자사이에 균형을 취할 방도를 아직 못찾고 있는 것 같다. 의회와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것을 알수 있다.
「외교적인 승리가 재선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외교정책의 실패는 낙선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린든 존슨과 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은 베트남전과 이란의 미대사관 인질사건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을 클린턴대통령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정리=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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