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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품쓰다 들켜 탈출도”/절도범까지 공개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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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품쓰다 들켜 탈출도”/절도범까지 공개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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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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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벌목공중 3∼4% 이미 도망/귀순 북벌목공 9명 회견 8월16일 귀순한 북한 벌목공출신 한창권씨(33)등 9명은 8일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는 북한 벌목공 1만여명중 3∼4%가 탈출한 것으로 알고있다』며 『탈출자가 많은 날은 하루 5∼6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한씨등은 이날 상오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탈출 벌목공들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많이 살고있는 고려족 사이에 숨어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며 지내고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89년 이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치적인 핍박이 탈출이유의 대부분이지만 그 이후로는 하바로프스크에 널리 퍼져있는 한국산 치약과 비누를 몰래 사용하다 걸려 체벌이 두려워 도망나온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의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86년 함흥시에서 도둑질을 한 형제 2명을 반역자로 부르면서 공개재판을 통해 형은 총살, 동생은 교수형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공개재판과 처형이 공공연히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범의 경우 재판과 처형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며 몽둥이로 때리거나 흉기로 찔러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처형담당자에게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벌목공출신 귀순자는 다음과 같다. ▲안충학(36·전함남광업후방물자공급소 운전수) ▲한창권(전함흥시 수병종합진료소 동의의사) ▲최학진(32·전자강도 도당11호군사건설중대장) ▲변철수(37·전신의주시 마이신공장 선전대원) ▲엄만규(37·전청진시 김책제철소 자재과 노동자) ▲김순구(33·전강원 천내군외화벌이사업소 노동자) ▲이상윤(31·전황북 은파군협동농장 농장원) ▲김장호(31·전 은파군도시건설사업소 미장공) ▲한철길(35·전천내군 문화회관 영화기사) 【선년규기자】

◎일문일답/의사도 월급적어 벌목공 자원/함흥선 “쌀을 달라” 낙서발견도

 ―벌목장을 탈출한 동기는. 탈출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89년 사업소에서 개인장사를 하다 안전부장에게 들켜 강제 귀국당할 처지가 돼 탈출했다. 당시에는 식량사정이 좋은 편이었으나 사업소마다 한달에 5∼6명이 탈출했다. 최근에는 해마다 벌목공의 3∼4%, 3백여명이 탈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철길)

 『하바로프스크에는 질좋은 남조선 치약 비누등이 들어와 벌목공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당간부들과 안전부 요원들은「남조선 물건은 미국에서 원료를 들여와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하면 에이즈에 걸린다」며 사용을 금지시키고, 어기는 이들은 정치범으로 몰아 강제 귀국시킨다. 나도 남조선 물건을 사용하고 개인장사를 하다가 들켜 탈출했다』(엄만규)

 ―벌목장에서 받는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자원하는가.

 『벌목산지 근로자와 일하기 편한 평지 근로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92년당시 벌목장에서 보일러공으로 일할때 러시아 돈으로 한달에 50∼60루블을 받았으나 생활비등 명목으로 떼고 나면 20∼25루블이 남는다. 주로 노동자 계층이 자원하지만 당간부들도 있다. 나는 88년 함흥의대를 나와 함흥시 수경종합진료소 의사로 일했으나 월급이 일반 노동자와 같아 벌목공을 자원했다』(한창권)

 ―북한에서 공개처형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88년 11월 청진 수성천변에서 살인미수범을 공개 처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처형에 앞서 살인 흉기를 제시, 죄를 인정케 한 뒤 안전원들이 범인의 입에 강제로 재갈을 물리고는 사격수 5명이 3발씩을 목 가슴등에 쏘아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0년간 정치범 수용소에서 몽둥이로 정치범 30명을 때려 죽였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엄만규)

 『86년 함흥 강변에서 재일 동포 귀국자 집에 물건을 훔치려 들어 갔다가 인질극을 벌인 5명을 공개 총살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안충학)

 ―식량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데.

 『87년 함흥 성천구역 버드나무숲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낸 자리에「배고파 못살겠다. 쌀을 달라」고 쓴 낙서가 발견된 적이 있다』(한창권)【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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