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달라지고 있다. 수년 동안 차분히 고속성장을 지속하더니 이제는 국제사회의 중앙무대에 서서 「부의 외교」를 펼치고 냉전 이후의 역사에 자기 나름의 분명한 자취를 남기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상당한 결실을 보고 있다. 이를테면 무역을 인권과 연계시켜 독재체제를 징벌한다는 미국의 정책은 중국에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미국이 아이티에 대한 다국적군의 침공을 준비하고 쿠바에 대한 무역봉쇄를 더 한층 조여 나갈 때 브라운상무장관은 인권의 사각지대인 북경에서 47억달러에 이르는 상업계약의 체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중국시장은 전도사의 기질이 농후한 미국마저 이상과 원칙을 접어둘 만큼 매력적인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강택민국가주석겸 공산당 총서기는 미국과 무역상담의 결실을 맺자마자 모스크바 방문길에 올랐다가 귀국했다. 러시아와의 동반자적 관계를 선언하면서 서부지역의 양국 국경을 확정하고 전략핵미사일을 서로 겨누지 않을 것을 약속하기 위해서였다.
역설적이지만 중국이 자신의 운신의 폭을 이렇게 넓힐 수 있는 것은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가 멸망한 덕분이다. 탈냉전의 시대에 미국과 중국을 갈라놓을 이념은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치열한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서로 나누어 가질 공산진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탈냉전의 정치는 무한 경쟁의 시장 쟁탈전이고 이러한 경제의 시대는 중국의 「상품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만을 무력통일할 수 있다는 유화청당중앙군사위 부주석의 발언, 홍콩을 인수하면 「식민지」의 의회를 폐지한다는 전국인민대회의 결의, 한국을 배제하는 평화체제의 구축에 동조하면서 판문점의 군사정전위에서 일단 철수한 중국, 이 하나하나가 아직은 북경이 주변 소국과의 군사적 관계에 한해서는 냉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렇다면 중국 외교의 이중성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이 나라에는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죽었지만 초라한 기득권 계층으로서의 공산당은 아직 살아남아 정당성의 문제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 모순은 주변의 분단국가에 대한 냉전적 군사정책을 재생산하고 중국 외교의 이중성을 배태한다.
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체제모순을 부각시켜 정당성의 위기를 부추길 근대화의 성공작이기 때문에 의회 폐지와 무력통일의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총체적 파탄에 직면한 북한은 중국이 안정시키고 지켜야할 군사적인 완충지대인 탓에 한국에 대한 냉전적 군사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 외교의 이중성을 직시하고 기대의 수준을 낮추어야 한다. 중국이 친한국이냐 친북한이냐는 단순한 외교의 차원을 넘어서는 체제의 문제다. 중국은 우리가 양보한다고 우리 편에 설 성질의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보다 당당한 자세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논하면 북경이 마음놓고 이중적인 행동을 더이상 취할 수 없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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