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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관문 프로비데냐(베링해협을 가다: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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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관문 프로비데냐(베링해협을 가다:5·끝)

입력
199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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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거주 3년 “수용소에 갇힌듯”/시전체 중앙난방·획일적 회색건물… 철저한 계획도시 유라시아대륙의 북동쪽끝, 광활한 시베리아가 베링해와 맞닿는 부분은 러시아행정구역상 추코트민족관구(민족관구)에 속한다. 소수민족 추크치의 거주지로 러시아연방의 다른 공화국들처럼 모든 행정을 추크치족 스스로 꾸려가는 자치구역이다. 추크치족은 순록을 방목하는 북방시베리아 계통의 유목민이다. 탐험대는 추크치에스키모가 사는 유라시아대륙의 땅끝마을인 데즈네프곶의 우엘렌으로 가기 위해 소형 비행기편으로 해협을 건너 추코트민족관구의 프로비데냐로 갔다. 프로비데냐는 북극해의 여러 항구와 원동아시아의 부동항들을 연결하는 항로의 중간기착지로 발달한 항구도시다. 바다가 보이는 건물 벽에 「프로비데냐항구는 북극해의 관문이다」라는 큼직한 글씨가 씌어 있다.

 프로비데냐는 강원도의 탄광촌같은 인상을 준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낡은 공장의 굴뚝에선 하루종일 검은 연기가 치솟는다. 전기와 온수를 공급하는 발전소 겸 중앙난방시스템이다. 제대로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중앙로를 따라 획일적으로 네모반듯한 5층짜리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줄지어 섰고 모든 건물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5층 건물 안에 아파트와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짙은 회색빛 건물이 도시 전체를 우중충하게 만들고 있지만 각 가정은 중앙난방이 잘 되어 꽤 훈훈하고 집집마다 초록색이 그리운듯 화초기르기에 열성적이다.

 프로비데냐의 중앙난방시스템은 이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동토위에 철저한 계획아래 조성된 거주지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겨울이면 밤이 수개월씩 이어지는 이곳에 스스로 원해서 살고 있는 주민은 한명도 없는 듯하다. 우연히 만난 고려인 보리스 박씨의 말대로 모든 시민이 의무거주기간인 3년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벼르고 있다. 프로비데냐는 비행기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한 줄로 뻗은 중앙로를 벗어나면 도로가 없고 광막한 툰드라가 앞을 막는다. 베링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에 살면서도 이곳 시민들은 수용소에 갇힌 듯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북단 한국인 보리스 박/시건물 대부분 건설… “따뜻한 곳으로 가고파”

 프로비데냐시민 보리스 박씨(56)는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에 사는 한국인일 것이다. 이곳에서만 31년 살아온 그는 어릴 때 익힌 한국말을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베링해가 내려다보이는 중심가의 아파트를 방문,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자 그는 귀를 의심하는 듯했다. 『여기가 어딘데 조선사람이 왔습네까』 박씨는 감격해하며 손님을 맞았다.

 우즈베키스탄의 알마아타 출생인 박씨는 선친 박연호씨와 올가 최씨(조선이름은 잊었다고 했다)의 3남2녀중 막내. 다른 형제들은 알마아타에 살고 있으며 한국에도 친척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해주에서 건축대학을 나온 그는 63년 졸업과 함께 이름도 생소한 프로비데냐에 건축기사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데가 있나 싶더군요. 사방이 바다와 툰드라로 막혀 섬같지만 1년에 8개월은 항구가 얼어붙어 섬보다 더 고립되지요. 긴긴 겨울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박씨의 직책은 프로비데냐시 건설부의 부국장. 68년부터 집짓는 일만 해와 프로비데냐 건물의 반이상을 지었다. 박씨는 간호사인 부인이 2년후 정년퇴직하면 함께 중앙아시아의 따뜻한 곳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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