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사기·경제 모두 피폐/의사월급 20불 수준… 생필품사기도 벅차/병원엔 약품바닥… 영양결핍에 헌혈격감 쿠바가 흔들린다.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고 남아있는 국민들도 사기가 말이 아니다. 나아질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금수조치 해제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지만 클린턴이 카스트로에게 「선물」을 줄 것 같지 않다.【아바나=김인규특파원】
쿠바가 이처럼 밑바닥까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소련등 동구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부터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원유공급이 끊겼고 최대의 무역 파트너였던 동구권과도 교역이 거의 중단되면서 쿠바경제는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2년전부터 미국의 경제금수조치가 강화되면서 쿠바국내에서 달러구경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크게 보면 사회주의체제 자체의 한계가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다. 관광수입과 미국에 있는 쿠바인들이 보내오는 달러가 국가수입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체제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도 아바나의 길거리에 나서면 난감해진다. 『모네디타(동전 한닢만)』 『카라멜로(카라멜)』를 외치는 꼬마들이 마구 달려들기 때문이다. 젖먹이를 안은 여인네들까지 구걸행렬에 나선다. 쿠바인들에게 배급되는 빵은 1인당 하루 1개뿐. 그나마 우유는 어린이들에게만 배급된다. 연료난으로 우마차가 다니는 거리표정과 심드렁한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서 이 나라의 좌절을 느낄 수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쿠바정부가 사회주의 혁명후 35년간 자랑해 왔던 무료진료·무료교육·완전고용등 3대 복지정책은 와해단계에 이르렀다. 실업자는 급증하고 병원에 가도 의약품이 없다.
쿠바 최대 국영관광회사 쿠바나칸의 한 관광택시 운전사는 『시내에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며 『이는 젊은이들이 관광 또는 외국과 관계된 회사에서만 일하려는 경향과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칼리스토 가르시아병원도 의약품 부족으로 환자치료에 거의 손을 놓고 있을 정도다. 영양결핍으로 인한 헌혈자들의 격감으로 혈액재고도 바닥난 상태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국민건강상태보고서에 의하면 산모들의 영양결핍으로 저체중아 출산율이 91년 8.2%, 92년 8.6%, 93년 9%로 점차 늘고 있다.
한 외과의사(32)는『빵집에도, 정육점에도 물건이 없다. 생필품을 사려면 달러를 들고 외화상점에 가야 한다. 내 월급을 몽땅 달러로 바꾸면 20달러 내외가 될 것이다. 아들녀석이 군것질거리를 사달라고 하면 난감하고 가슴아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그란마」 「트라바하도레스」 「오피니언」등 공산당기관지들도 약초를 이용한 민간요법이나 침술의 장점을 집중소개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게재하고 있다. 「천식에는 해수욕이 최고다」 「자전거 출퇴근으로 건강증진은 물론 교통수단 부족을 타개하자」 「부족한 학습도구는 서로 협조해 활용하자」는 등의 캠페인성 내용을 톱기사로 다룰 정도다.
그나마 달러를 구경하는 주민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에 위화감도 커져간다. 아바나 구시가지 사믹나시모거리에서 외국관광객에게 공예품을 파는 40대의 한 여인은 『지난해 달러의 개인소지를 허용한 이후부터 나는 피델 카스트로를 싫어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태어났으나 피델은 돈 한푼 내지 않고도 대학을 졸업하게 해주었다.그래서 나는 쿠바국민인 것을 언제나 자부해왔다. 조금만 참으면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다짐해 왔다. 그러나 쿠바가 싫다고 떠난 사람은 형편이 훨씬 좋아지고 나머지는 정말…』상대적 박탈감은 쿠바인들의 정신적 일체감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글·사진=김인규특파원】
◎활기잃은 젊은이들 “떠나고 싶다”/디스코테크 가려면 달러가져야/방문객들 “점심먹는 학생 못봐”
『여기 이 탱크는 지난 58년 바티스타정부가 학생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시켰다가 여러분 선배들에게 나포된 것입니다. 자랑스런 혁명 유물인 셈이지요』
3일 정오께 아바나대학 교무처 여직원이 역사학과 신입생 20여명에게 본관 뜰 한쪽에 세워져 있는 구형 탱크의 내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몇 군데를 더 소개한 뒤 이 여직원은 신입생들에게 질문이 없느냐고 물었다. 질문하는 학생이 없자 여직원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나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말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상한 것은 대학신입생들에게서 으레 발산되는 활기와 호기심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심드렁하고 축처진 모습뿐이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이들을 지치게 만든 것일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캠퍼스의 학생들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18세기에 지은 웅장한 석조건물과 아름드리 벤자민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아바나대학은 이처럼 활기 잃은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잡담을 하고 있는 몇몇 학생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수등 몇가지 일반적인 질문을 한 뒤 지난달 벌어진 반정부시위와 뗏목 탈출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젊은이들은 청춘을 발산할 곳이 없다. 호텔의 디스코테크등은 달러를 가졌거나 외국인과 동행해야 들어갈 수 있다. 깜깜한 밤거리를 보면 숨이 막힌다』
법학을 전공한다는 조안나라는 여학생은 시중에 나도는 블랙유머 한 토막을 소개했다. 『태평양에서 상어 두 마리가 만났는데 한 마리는 통통하게 살이 쪘고 한마리는 비쩍 말랐다. 통통한 상어가 말했다. 「러시아 해변에 갔다가 살찐 러시안인을 잡아먹고 돌아오는 길이다」 야윈 상어는 처량하게 자기의 앙상한 갈비뼈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쿠바해변에 사냥하러 갔더니 쿠바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아 여기 좋은 생선이 있다며 잡으려는 바람에 줄행랑쳐 오는 길이다」』라고.
쿠바와 합작중인 관광업을 더 확대해도 될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스페인인 파코 마차도씨(28)는 『며칠째 대학을 둘러보고 있으나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고 이곳 경제난의 한 단면을 전했다.
이들 대학생보다 길거리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이었다. 구시가지 술루에다의 한 책방에서 만난 페드로씨(25)는 거리에서 반체제인사의 책등을 팔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젊은이.건축학을 전공한 뒤 취직했으나 도저히 전망이 보이지 않아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페드로씨는 『이 나라는 우리 젊은이들의 청춘을 매일 훔쳐가고 있다』며 『할아버지가 하도 말려 뗏목 탈출은 포기했지만 쿠바를 떠나기 위해 현재 미국 개신교 단체와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아바나=김인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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