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객들 눈물대신 환호/“이념보다 빵” 혁명가도 동참/경비병 팔짱만 낀채 모른척【아바나=김인규특파원】 3일 (한국시간 4일) 쿠바 북쪽 플로리다 해협과 연해있는 코히마르, 산타 페, 마탄사스 지역등의 해변에는 조국을 등지고 「필사의 항해」에 나서는 난민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난민탈출의 열병은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높은 파도와 탈수현상, 언제 상어떼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그들은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탈출 러시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그것을 아는 쿠바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국을 등지고 필사의 항해에 나서는 사람은 오히려 한가닥 희망을 안고있는듯 보였고, 그들을 배웅하는 이웃들은 절망감을 되씹는듯 보였다.★관련기사 5면
아바나에서 15 북쪽에 위치한 코히마르 해안.호세 마누엘(20·배관공)은 낡은 운동화 한짝을 동생(11)의 목에 걸어준뒤 친구 3명과 함께 탈출용 뗏목을 바다에 밀어 넣었다. 『뻬뻬(호세의 애칭), 부에나 수에르떼(행운을)』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또 한편의 탈출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나무판자 뗏목에 오르면서 『쿠바에선 더 이상 살 수 없다. 미국에서 돈을 벌면 동생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겠다』며 다 해진 슬리퍼를 애써 감추었다.
해안의 한쪽에서 떠들썩하게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발세로스」(현지에서 부르는 탈출자들)를 배웅하는 이웃 주민들이 터뜨리는 환호성이었다. 떠나는 자의 불안과 보내는 자의 이별의 슬픔을 박수와 환호로 대신하는듯 했다.
인파속의 주인공은 미겔 데 체(51·주방장). 미겔은 판자로 바닥을 깐 뒤 그밑에 스티로폴을 대고 코르타르 덧칠을 하는등 배의 마무리 작업에 열중했다. 그의 이름끝에 붙어있는 체(CHE·동지)는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혁명가 체 게바라에서 따온 호칭. 혁명에 기여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이름으로 그도 혁명정신에 투철했던 쿠바국민이었다. 그는 이념보다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조국을 등진다.
전날인 2일 상오 10시께. 아바나 이라마르가 트리톤 호텔옆 해안에서 에르네스토 하비에르(31)형제가 고무튜브 2개로 만든 뗏목에 올랐다. 형제는 『쿠바와 미국간의 난민협상에서 난민탈출 중단 선언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 급히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비에르 부인 파울라 치엘라(33)는 『바다가 잠잠했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산타 페 해안에서도 천둥과 비바람으로 요동치는 변덕스런 날씨속에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안가 옛성곽 옆에 경비초소의 경비병들은「지도자의 명령」만 기다릴 뿐 팔짱을 낀채 무심히 탈출자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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