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핀란드대사인 김평일의 오스트리아 망명설이 북경에서 터져나와 한바탕 소동을 겪은지 바로 며칠 뒤의 일이다. 중국인이 조심스레 털어 놓은 북한에 관한 「특급정보」에 잔뜩 긴장하고 귀를 기울이고 난뒤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김평일이 현재 북경주재 오스트리아대사관에서 망명을 교섭중에 있다』는 것. 중국소식통은 북한으로부터, 그것도 고위층으로부터 들은 「확실한 정보」라고 정색을 했지만 한국언론에 보도됐던 내용이 건너건너 전해진 끝에 나온 것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전달되는 과정에 「오스트리아」가 「북경주재 오스트리아대사관」으로 바뀌어 그 「전문」은 「원전」보다 한층 그럴듯한 것이 돼 있었다.
이처럼 북경에서는 소문이 그냥 죽는 법이 없다. 「부활」하고 「윤회」하고 「진화」된다. 요즈음 북경에서 나도는 소문중 최고의 인기품목은 단연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다. 김일성사망이후 두달이 다되도록 국가주석과 총비서직이 비어 있는 이상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건강」은 그동안 북경의 소문인기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등소평건강」마저 밀어낸 감마저 있다.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하여 부활―윤회―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소문중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정일 낙마사고설이 있다. 이 소문은 지난해 7월께 북한에 주재하고 있던 제 3세계국가의 외교관이 북경을 휴가차 방문한 길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평양에서 나도는 얘기라며 『김정일이 승마도중 낙마, 목뼈가 부러져 식물인간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던 이 소문은 몇달 뒤 김정일이 공식석상에 등장하면서 헛소문으로 판정난듯 보였다.
그러나 이 소문은 김정일의 활동이 뜸해지면서 다시 부활―윤회―진화를 거듭했다. 낙마사고로 김정일이 신경계통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에서 뇌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거쳐 가장 최근에는 간질증세에 연관시키는데 이르렀다.
북한소식은 물론 중국에 관한 소문들도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 많다.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북경에서 정보유통이 자유롭지 못한데다 책임 있는 곳에서 문제가 된 소문에 대해 딱부러지게 「사망판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북경을 떠도는 무수한 소문중 중국의 외교정책과 관련한 것은 확인할 통로를 마련해 두고 있다.
중국외교부에 진위여부를 문의하면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답변을 준다. 그러나 이 답변이 때로는 궁금증을 증폭시킬 때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중국외교부가 사용하는 최상급의 부인은 「숨은 의도를 가진 완전한 날조」라는 표현이다. 이쯤 강하게 부인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짐작하긴 하지만 매번 이처럼 딱부러진 답변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도의 근거를 발견할 수가 없다」「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소문이다」 「질문에 대해 논평을 하지 않겠으니 우리의 입장은 이러이러하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문제의 보도 혹은 소문이 전혀 사실과 무관한지는 알쏭달쏭해진다.
무성한 소문과 전언중에는 분명 진실을 반영하는 것도 상당수가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확인할 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헛소문도 이 틈에 끼어 윤회를 거듭하며 정확한 정보의 갈증을 부채질한다.【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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