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들 아직 애도… 「최고회의」 안급해/통일은 두 사상·제도수용 연방제로”/망명설 묻자 웃으며 “나도 들었지만 완전한 거짓말” 본지의 서사봉문화1부기자는 핀란드정부 초청으로 헬싱키를 방문중 김일성의 2남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주핀란드 북한대사를 인터뷰했다. 김일성사망후 망명설등 끊이지않는 관심의 대상인 김평일이 한국기자들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평일 은 31일 하오5시8분(한국시간 31일 밤 11시8분) 그의 리셉션 참석사실을 확인, 슬로바키아 대사관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다. 손에 경련이 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몹시 당황한 그는 『언제 귀임했습니까』 『김정일비서는 잘 있습니까』등 질문에 대해 『(대사관(북한)에 물어보시라우요』 『여긴 행사장이니까…』라는등 말을 피하며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1시간10여분뒤인 하오6시20분(한국시간 1일 0시20분) 행사를 마치고 나온 김평일은 부인 김순금과 함께 승용차앞에서 여유를 되찾은듯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로 기자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했다. 김평일은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나는 명함이 없어 주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대사가 망명했다는 잘못된 보도가 있었는데 들었습니까.
『그런 소식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완전한 거짓이오』
―평양에는 왜 그렇게 오래 머물렀습니까.
『…』
―요즘 마음이 좀 불편 하신 것 같은데.
『왜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통일이 돼서 서울에서 만나야 되지 않습니까.
『…』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이 돼 자유롭게 만나야지요.
『통일은 두 측의 사상과 제도가 다 수용되는 연방제로 해야지요』
이때 김평일은 『어디 기자라구요』라고 물으며 기자의 명함을 받아 소속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행사장에 들어가기전 김정일의 건강문제에 대해 물었던 질문에대해 일부러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아까 김정일동지의 건강을 물어보았지요. 아무 문제 없어요』
이 말을 남기고 그는 자신의 260E CD2201 벤츠승용차에 올라 출발하려 했으나 질문이 이어지자 운전사를 제지시킨뒤 차속에 앉아 답변을 계속했다.
―주석직 승계는 언제하게 됩니까.
『애도기간이 끝나면 하지요』
―애도기간은 1백일입니까. 언제 끝납니까.
『정해놓은 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우리 인민들은 아직도 애도기간으로 여기고 있어서 「회의」(최고인민회의등)는 바쁘지 않아요. 앞으로 다 잘 될 겁니다』
―정식으로 대화를 하시지요.
『차후에 봅시다』『대사관과 연계해서…나중에 봅시다』
이에앞서 김평일은 리셉션장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와 몇마디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때에는 한국기자들을 애써 외면했고 그의 뒷짐진 손은 눈에 띌 정도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에서 온 기자들입니다. 언제 귀임했습니까.
(멈칫하며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대사관에 불어보시라우요. 여긴 행사장이니까』
―김정일 비서는 잘 있습니까.
『…』(이때 그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놔주지 않는 기자들을 뒤돌아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리셉션이 끝난 뒤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여긴 행사장이니까…』
김평일은 180정도의 훤칠한 키에 「온실에서 자란 귀공자」의 모습이었고 억양은 평양사투리이면서도 어투는 서울말과 비슷했다.
김평일은 짙은 회색 싱글차림에 얼굴이 검게 그을러 건강해 보였고 부인 김순금은 검정색 투피스차림으로 회견을 지켜보다가 「망명설」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조용히 웃기도 했다. 김순금은 금테안경에 파마를 했고 상당히 이지적인 인상을 풍겼다.
한편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김평일의 운전기사는 김평일이 행사장에 들어간 뒤, 슬로바키아 대사관저로부터 1백50 떨어진 곳에서 다른나라 대사들이 세워놓은 차들 사이에서 대기했는데 기자들이 그쪽으로 가자 인근 중국대사관 쪽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30여분 뒤 다시 반대쪽에서 차를 몰고 나타난 운전기사는 기자의 질문에 『온지 한 달 밖에 안됐다』며 입을 다물었으나 『김대사가 4월에 평양에 갔다 7월말에 온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대사관저를 경호중이던 핀란드 경찰로부터『차를 문 앞에 세우라』는 김평일의 연락을 받은 운전기사는 김평일 부부가 나올때까지 기자들을 날카롭게 지켜 보았다. 기자들이 『대사가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곧 나오신다』는 말만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기자는 이날 하오5시에 열리는 슬로바키아 독립기념일 리셉션에 김평일이 참석할 것으로 판단, 리셉션 시작 1시간 전부터 슬로바키아 대사관저 앞에서 김평일을 기다렸다. 김평일과 두번의 단독인터뷰를 하는등 김과 가까운 사이라는 핀란드 유력지 「일타사노마트」의 전직기자 마르티 후타마키는『김대사가 최근 북한대사관 근처에 사저를 구입했으며 아들과 딸 두 자녀를 이곳 국민학교에 입학시킬 예정』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의 얘기는 김평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핀란드에 영구정착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자아내게도 했다.
김평일은 김일성장례식이 끝난뒤 핀란드에 귀임해 지난8월에만도 16일 인도네시아, 24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리셉션에 참석하는등 정상적인 활동을 해왔음이 확인됐다.
슬로바키아 대사관저는 북한대사관이 있는 푸이소토티에가 32번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외교공관가」의 중국대사관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헬싱키=서사봉기자】
◎김평일은 누구/군대좌경력… 간부들 상당수 지지/김정일견제로 88년이후 「해외유랑」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40)은 이른바 김일성의 「곁가지」중에서도 김정일로부터 가장 철저한 견제를 받아왔다. 군경력이 전무한 김정일에 비해 그는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상당수 군간부들의 지지를 얻고 있을뿐 아니라 1백80㎝의 키에 잘 생긴 외모등이 김일성과 가장 닮았는 평을 받고 있다.
이때문에 그는 81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 이후 84년부터 88년까지의 인민무력부와 호위총국(주석경호실)근무를 제외하고는 줄곧 대사로 외국을 떠도는 「유랑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김일성사망후 한때 그가 권부의 핵심을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자아냈고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망명설」이 떠돌기도 했다.
김일성은 49년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죽자 김성애와 재혼해 경진(42·여), 평일, 영일(39), 금순(38·여)등 2남2녀의 「곁가지」를 두었다. 이들중 장남인 김평일은 북한의 최고 엘리트코스인 남산고등중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마친뒤 인민무력부경비국장등 군에서 대좌(대령)까지 올라가는등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했다. 김평일은 88년 헝가리대사, 89년 불가리아대사를 거쳐 올해 3월부터는 핀란드대사에 임명되는등 주로 이국땅을 전전하다 지난 4월22일 급거 귀국했으며 김일성장례식이 끝난뒤 7월말 핀란드에 귀임했었다. 그는 평양에 있는 동안 김일성장의위원 명단에도 끼이지 못해 그와 곁가지들이 김정일저항조직으로까지 세력화할만한 처지가 아님을 말해 주기도 했다.【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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