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다 못할게 없다” 주말열전/동료·가족도 응원전 애사심 “절로” 선수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펼치는 동안 스탠드에서는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직원들과 넥타이부대가 열광적인 응원을 했다. 부서원들과 함께 자주 응원을 온다는 쏠라이트 밧데리 자재과의 강혜숙씨(27)는 『프로야구도 좋지만 우리 회사사람들이 뛰는 경기가 더 친근하고 응원도 신이 난다』며 응원단장의 지시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가장을 야구에 빼앗겼다고 불평하던 부인과 아이들도 이제는 주말이면 으레 도시락을 싸들고 와 함성을 지른다.
직장인야구는 사원간의 친목을 돕고 가정의 화목에도 기여하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선수들은 늘 주말을 기다린다. 토요일 하오나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치고 달리고 던진다. 야구에 열중해 한 바가지 땀을 쏟고 나면 한 주간의 스트레스가 씻은 듯 사라진다. 운동이 끝나고 목욕을 한 뒤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더욱 즐겁다. 단잠을 자고 출근하는 월요일,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야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지만 직장인 스포츠에서도 최고 인기종목이다. 현대해상화재보험팀의 이영철씨(38)는 『9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야구는 동료애를 다지는데 최고』라고 말한다. 또 다른 단체종목과 달리 제대로 된 장비와 일정수준 이상의 기술을 갖춰야 하는데다 기록을 통해 기량을 점검해 볼 수 있어 오락과 기술을 함께 즐기려 하는 직장인들에게 잘 맞는다고 설명한다. 보는 사람들도 쉽게 즐길 수 있어 애사심 증진에 한 몫을 한다.
현재 태평양 농협 일광금속 한국통신 미도파 포철 동서증권 대한주택공사 호텔신라등 웬만한 회사에는 야구팀이 한 두개씩 있고 학교 동창이나 친구들끼리 만든 동호인팀도 부지기수다. 고교야구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사회인 야구팀들은 91년 한국사회인야구연맹(회장 양명균) 창설 이후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연맹 산하에 10여개 리그가 있어 매주말 경기를 치른다. 등록된 팀은 수도권만 1백여개에 이르고 1년에 두차례 전국대회도 열린다.
직장인 야구선수들은 한 마디로 열심이다. 실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직업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운동장에 나온다. 훈련도 헐렁하게 하는 법이 없다. 몸이 무거운 40대도 한창 팔팔한 후배들에게 지지 않고 열심히 뛰며 경기날은 새벽같이 나와 몸을 풀고 프리 배팅을 해댄다. 전국대회가 있을 때면 합숙훈련까지 한다. 자연히 함께 땀흘린 선수들간에는 여느 직장에서 보기 힘든 끈끈한 정이 흐르게 된다.
각 회사는 회사의 명예를 높이고 간접홍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사팀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가 유니폼 각종 장구등 줄잡아 5백만원이 드는 창립자금을 대주는데 20명 기준으로 한달에 최소 50만원이 소요되는 운영비까지 전액 지원하는 곳도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의 경우 1루수인 정몽윤사장이 평사원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큰 경기가 있으면 버스, 도시락을 제공해 사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있다. 간혹 운동이 과해 업무에 지장이 있더라도 이제는 회사일 때문으로 받아들여주는 분위기다.
직장인 야구선수들의 가장 큰 바람은 운동장을 마음껏 사용하는 것. 학교나 은행구장을 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인야구연맹 김광복총무(40)는 『보다 많은 팀이 리그에 가입해 야구를 즐길 수 있게 하려면 학교시설 임대와 회사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회체육에 대한 행정당국의 지원책 마련을 희망했다.【김지영기자】
◎법조야구팀/법복벗고 마운드에… 만년하위서 올시즌 무패행진 “분전”
1백개가 넘는 직장인 야구팀중 법조야구단(단장 정진규 서울지검 공안2부부장검사)의 파이팅은 주목할만 하다. 한종원 인천지법 민사3부부장판사, 박유신수원지법 민사6부부장판사등 판·검사 10명과 일반직 33명으로 구성된 법조팀은 구력 8년의 중견팀. 86년 서울지법 남부지원팀으로 출범, 지금은 전국의 법조를 망라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도 법조팀은 실력 자체보다는 직장의 특수성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평균승률 5할이 안돼 우수직장리그중 가장 하위인 3부리그에서도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래서 지난 겨울, 시즌후에도 매주 동계훈련을 하고 다른 팀들을 분석하며 필승작전을 세웠다. 그 결과 법조팀은 거듭났다. 눈에 띄게 실책이 줄고 호흡도 척척 맞아 올시즌에는 7전 전승으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선수 대부분이 운동을 좋아했던 사람들이지만 처음엔 글러브를 끼는 것도 서투른데다 직업의 특성상 최소 인원인 9명이 모이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일산등지에서 경기가 열리면 광주에서 상경하는 선수도 있다. 일단 모이면 근엄한 판사나 날카로운 검사, 깐깐한 법원 직원들이 아니다. 가족들도 단체로 빨간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와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가 하면 남편의 성적관리를 위해 야구기록법을 배우는 알뜰내조를 아끼지 않는다.
올해 목표는 전승으로 3부리그 우승을 한 뒤 다음 시즌에 2부리그로 올라가는 것이다. 김학기총무(41·사법연수원 전기실 계장)는 『처음엔 법조팀이라고 괜히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야구로 스트레스를 풀고 넓은 의미의 대민봉사도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죠』라고 말한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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