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문학의 새길찾기”/“삶이란 논리적이지도 예측되지도 않는것”/기승전결 형식없이 대화체 전개대화체문장을 통해 우리말의 가락을 살려내는데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소설가 서정인씨(58·전북대 영문과교수)가 8년만에 다섯번째 소설집 「붕어」를 낸다.
세계사에서 곧 출간할 「붕어」에는 「해바라기」 「국경수비대」 「환상」등 중·단편 소설 7편이 수록된다. 이 소설들은 대부분 기승전결 형식을 갖추지 않은 대화 위주로 전개된다. 뚜렷한 주인공도 없는데다 도중에 다른 얘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긴 사설조의 대화가 계속되기도 한다.
대화가 줄거리를 압도하는 소설양식은 그가 모색하는 리얼리즘 문학의 새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작위적인 줄거리와 문어체 말은 그에게는 보통사람들의 삶과 현실의 겉을 핥을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현실은 자기와의, 또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그래서 일상적인 독백과 대화의 표현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이라는 것이 그의 문학론이다.
그는 『보통 삶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고 예측되지도 않으며 사람의 일상적인 생각도 마찬가지』라고 「붕어」에 이야기의 흐름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왜 하필이면 철원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춥냐, 강원도 속초며 춘천은 다 놔 두고? 속초는 바닷가야. 춘천은 북위 삼십팔도 이남이고…여고 때 지리 선생 찾아가 월사금 물려와. 영어선생하고 국어선생은 어쩌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있어야지. 가사는 잘했다고. 가사선생헌테 얼마나 칭찬을 들었는디. 바느질?>
중편 「붕어」의 앞머리는 부부임직한 남녀의 대화로 인용부호까지 생략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학력과 성품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단서들이 들어 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대화로 인물의 사고의 깊이와 상황을 전달하고 또한 타락한 시대상을 해부한다.
<…재산공개헌다고 왜 법석들이냐? 안 숨긴 것을 드러내놓냐? 다 안 것을 알리면서 왠 생색이냐?…부정축재허고 합법축재를 가릴 작정이다냐?>(「망상」)
「해바라기」는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기우」에서는 『안팔리는 책 쓴다고 남아일생 허송말고 안 써지는 책 붙들고 작가행세들 허들마라』『어떤 로마시인은 별 볼일 없는 시인들은 신도 사람도 책방주인도 참지 못헌다고 했더라마는』등으로 작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대화는 판소리투의 사투리로 점철되는데 서씨는 『작가와 가장 밀착된 말들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문학을 이룰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달궁」으로 86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까지 범속한 사람들의 삶과 산업사회의 황량함을 주로 다루었다.
새 소설집에서 새로운 대화체의 소설쓰기로 타락한 현실을 진단해가는 그는 『작가가 말에 서툴면 소설이 신변잡사나 말장난이 돼버린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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