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첨단과학의 결정체인 비행기는 오로지 조종사가 모는대로 날아갈 뿐이다. 정밀항공기술은 분초를 다툴만큼 빠르게 발전해 간다. 기술군인 공군의 생명은 정직·정확함과 신속함에 있다. 그러나 지난 28일 일어난 내무반 크레모아폭발사고를 처리하는 공군의 모습은 전혀 정직하지도 신속하지도 않았다. 공군은 사고가 난지 40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TV폭발사고」라고 우긴 것이다.
폭발물을 다루는 전문집단인 군이 TV와 크레모아를 구별하지 못해 진상규명에 거의 이틀이나 걸렸다면 애당초 신속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크레모아폭발이란 결론을 내리고도 계속 TV폭발이라 주장했으니 거짓말까지 한 셈이다. 마하를 뚫는 제트기시대를 주도하는 공군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군의 주장을 옮겨보자. 해당부대의 첫 사고보고는 TV폭발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다음날 아침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뒤늦게 의심이 가 국방수사연구소등에 감식을 의뢰했으며 사고 20시간만인 29일 하오4시께 크레모아파편을 찾아냈다. 이어 밤12시께 크레모아폭발로 추정을 했다. 30일 상오10시께 공군참모총장은 크레모아사고라는 보고를 받았으며 11시반께 이를 보도진에 알렸다.
공군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살상무기인 크레모아가 터져 목과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참혹한 현장상황을 보고 어떻게 TV폭발로 보고를 할 수 있으며 이를 그냥 믿어 장관보고까지 했는가. 파편을 찾아내고도 8시간이나 걸려 크레모아폭발로 「추정」했으니 프로인 군의 행동으론 너무나 상식밖이고 굼뜬 행동이다. 30일 상오, 이미 일부언론에서 TV폭발사고로 보도됐는데도 참모총장이 10시가 되어 보고를 받았으니 지휘체계가 살아 뛰는 정상 조직으로 보기 힘들다. 그때 까지도 공군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줄곧 TV가 사고원인이라고 대답했으니 신뢰성은 어디로 갔는가. 현지 부대에서부터 숨기기 시작한 진실은 공군본부에 가서도 오리무중이었다.
공군은 지난 3월 총장전용헬기 추락사고 이후 다달이 전투기, 훈련기가 떨어지는 등의 사고를 일으켰다. 추락하는 공군에는 군의 근본인 정직·신속함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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