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최고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52)가 1일로 집권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4반세기동안 국내적으로는 독특한 사회주의를, 대외적으로는 범아랍주의와 반서방주의를 흔들림없이 표방해 왔으나 사회주의 붕괴와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상황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 활로를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난 69년 9월1일 약관 27세의 나이로 쿠데타에 성공한 카다피의 구호는 「도전과 대결」이었다. 서구적인 가치에 도전, 아랍의 고유전통을 수호하고 「십자군전쟁」을 꾀하는 서구열강과 대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적 스승은 사막 유목민 출신으로 열렬한 아랍 민족주의자였던 나세르 이집트대통령과 모택동, 스탈린등이었다. 한때 히틀러에도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다피는 국내적으로 독특한 아랍사회주의정책을 채택, 술과 도박을 금지하고 기업을 국영화했다. 또 인민회의, 노조등 대중조직을 통해 「풀뿌리 정치제도」를 수립했다.
이러한 도전을 하면서 그는 범아랍국가의 통일 시도, 반서방 급진단체에 대한 지원등의 대결을 해 나갔다. 특히 지난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상공에서 발생한 팬암기 폭파 용의자의 인도문제와 관련, 92년 유엔으로부터 항공기 운항 및 군사물자 거래 금지조치등 제재를 받았다.
카다피는 매년 60억달러에 이르는 석유판매로 이런 국제제재에 맞서왔으나 지난 93년 유엔의 제재가 한층 강화됨에 따라 물자부족으로 인한 생필품 배급, 연1백%에 이르는 인플레, 공무원봉급 연체등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그의 반제국주의 노선을 열렬히 지지하던 5백만 국민들의 열기도 시들해졌다.
카다피는 서방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죽이고 테러지원 중단을 선언하는등 돌파구 모색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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