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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섬 다이오미드(베링해협을 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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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섬 다이오미드(베링해협을 가다:4)

입력
1994.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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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는 정다운 섬에 “냉전의 상처”/이산46년 언어마저 달라져… “미도 싫고 러도 싫어요” 베링해협 한가운데 마주 보고 있는 두 섬 사이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수민족 에스키모의 이산의 아픔이 짙게 서려 있다.리틀 다이오미드(동쪽의 미국령 섬), 빅 다이오미드(서쪽의 러시아령 섬)라는 지명에 나오는 다이오미드는 탐험가 베링이 이 섬을 성 다이오미드의 축일에 발견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러시아에서는 북극권을 탐험한 탐험가의 이름을 따 동쪽섬을 크루젠슈테른, 서쪽섬을 라트마노프라고 칭한다. 그러나 정작 옛날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에스키모 원주민들은 축치어로 이마클릭, 이나클릭이라고 부른다.

 1867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에서 두 섬 사이가 국경으로 정해진 뒤에도 국가개념이 없는 에스키모들은 조상들이 하던대로 자유롭게 왕래해왔다. 러시아공산화이후에도 거리낌없이 배를 타고 맞은편 섬의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냉전의 여파가 밀려와 1948년 어느날 러시아측은 갑자기 주민들의 왕래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라트마노프의 친척방문에 나섰던 다이오미드 마을사람들이 국경수비대에 체포·감금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54년 소비에트당국이 라트마노프 주민들을 모두 본토의 데즈네프곶으로 소개시킨 이래 이 섬은 죽은 섬이 돼버렸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이산의 한은 점점 엷어지고 냉전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에스키모말조차 잊은채 가끔 바다에서 만나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한다.

 다이오미드에 도착한 탐험대가 해협을 건너 러시아쪽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전해지자 마을사람들은 너나없이 데즈네프곶의 친척에게 전해줄 선물꾸러미와 편지를 들고 숙소를 찾아왔다. 젖먹이적 헤어진 외할머니에게 보내는 가족사진, 얼굴도 본 일 없는 조카에게 줄 분유등이 탐험대의 배낭에 함께 꾸려졌다.

 미국땅 다이오미드에는 작지만 슈퍼마켓이 있고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지 본토에 우편주문을 하면 된다. 실내농구장을 갖춘 국민학교에는 스팀이 뜨끈뜨끈하게 들어오고 사냥꾼들은 최신식 스노모빌을 타고 해마사냥을 나간다. 데즈네프곶에서는 아직도 개썰매로 사냥에 나서고 아이들은 진흙탕에서 흙장난을 하며 논다.

 이산의 나라에서 온 탐험대원들에게는 이같은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버티며 이산의 한을 삭이는 에스키모의 처지는 우리나라에 대입시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오미드 마을위원회의 부회장인 밀리그룩씨(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에스키모이고 베링해협은 에스키모들의 사냥터입니다. 에스키모들이 수천년동안 해마를 잡으며 살아온 곳에 백인들이 들어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마클릭과 이나클릭이 예전처럼 통일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입니다. 미국도 싫고 러시아도 싫어요』<글·사진 박종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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