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중공업 노사분규가 호된 난항끝에 23일밤 전격적으로 마무리된뒤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울산현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노·사·정 모두의 승리」였다. 그러나 두달을 넘게 끈 장기 분규끝에 겨우 성사시킨 이날의 타결이 정말 당사자 모두가 흔쾌히 자축할만한 것일까. 서로가 제시하는 전리품들에는 나름대로 승리를 주장할 근거들이 있다. 정부는 대형사업장의 악성분규에서 처음으로 노사자율해결의 선례를 만들었고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지킴으로써 무분별한 파업의 제동장치를 마련했으며 노조는 두달에 걸친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임금손실분의 상당액과 고소·고발 취하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게임의 법칙에 모두의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단지 서로의 피해를 애써 가리고 다행히 비껴나간 최악의 상황에 비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자위용 수식어일 뿐이다. 정부의 자율타결과 편법해결 불가원칙은 불법쟁의로부터 선의의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하고 임금손실액의 상당부분 보전을 묵인함으로써 당초의 추상같던 권위를 잃었다. 회사도 말이 자율타결이지 사실상 정부와 노조의 벽사이에서 탈출구를 못찾아 우왕좌왕하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얄팍한 명분만을 손에 쥐었다.
노조집행부의 피해는 아마 그 어느 쪽보다도 크다. 명분약한 장기파업을 내부논리만으로 무리하게 밀고나가다 정작 근본적 존립기반인 일반조합원들의 지지를 잃었다. 막판 협상에서 간신히 어느 정도의 실리를 챙기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 정도로는 상처입은 조합원들의 불신과 회의를 잠재우기에 턱없이 미미하다. 더구나 그들 스스로의 일터를 자해한 꼴이 된 현대중공업의 엄청난 피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아직은 누구도 승리를 운위할 상황은 아니다. 내년의 노사협상에 가서야 정말 모두의 승리였는지가 정확히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켜져야 할 게임의 원칙만은 이번에 명확히 세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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