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과는 타협없다” 식량난 심각성 반영/북 현실 자각따라 부자세습 비판도 늘어 「김정일 타도」전단 살포사건을 계기로 정부당국이 분석한 북한의 특권층과 일반주민들의 의식현황은 북한이 자체 붕괴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느낄 만큼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정부는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가 별다른 동요없이 김정일에게로 권력승계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내의 조직적인 반체제활동이나 주민들의 의식변화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왔었다.
당국이 각종 정보채널을 통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90년대 들어 당 외교부 청사에 반김정일삐라가 살포되는가 하면 식량문제로 인한 학생데모도 발생하는등 의식의 반체제화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지도층의 경우 80년대 초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경제난으로 잠재적 불만이 가중되기 시작, 89∼90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현 체제와 향후 김정일시대 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있다는 것. 귀순자들은 당간부와 김책공대의 교수들이 주체사상탑과 남포갑문등 이른바 「기념비적 건설사업」을 비판했으며 다른 대부분의 지도층들 역시 이같은 냉소와 좌절을 겪고 있다고 증언했다. 과거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했으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일부 핵심측근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경제정책 실패와 지도자로서의 자질 부족, 그리고 권력암투등으로 인해 불만이 상당히 고조돼 있다는것. 실제로 사단장이었던 박성철부주석의 아들등 일부 군부세력들이 김정일과 정치적 알력을 빚고 있으며 한때 당 외교부 청사내에 김정일을 비방하는 삐라가 살포되기도 했다는 첩보도 있다. 또 부자세습체제에 대해서도 불만이 고조돼 군부와 학계등의 중간엘리트계층들이 학생조직과 연계한 소그룹을 형성, 체제를 비판하는 비밀집회를 갖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82년 국가정치보위부장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쿠데타계획이 발각돼 관련자들이 숙청됐으며 87년에는 당간부와 학생들이 연계된 반정부조직이 탄로나 모두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88년6월에는 당·정간부와 유학생이 연계된 반체제 조직이 적발돼 처형됐으며 북송교포 출신의 대학교원도 반체제 모임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행방불명됐다고 귀순자들은 전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은 지도층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차단돼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북한 현실에 어둡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외국관광객과 해외동포들의 방북, 유학생들의 소환등으로 외부세계 소식에 접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체제회의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귀순자들은 김일성종합대학생이 김정일에게 경제개혁을 건의하는 투서를 했다가 처형됐으며 이 학교의 또다른 학생은 반체제유인물을 제작·살포한뒤 자살했고 김형직사범대학의 한 교원은 소득격차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부착했다 적발됐다고 증언했다.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일반주민들 사이에는 『뱃속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으며 이를 김정일의 자질 부족이라고 판단, 그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이는 곧 집단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해 91년6월 함흥과 신의주에서는 식량사정을 호소하는 학생데모가 발생했으며 90년에는 구소련과 동구로부터 소환된 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전국 규모의 지하조직이 적발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소련이나 동구권 유학중 귀순자들에 의하면 유학생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북한체제를 혐오하고 있으며 북한의 부자세습체제등을 비판하다 소환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이들의 증언을 보면 모스크바종합대학과 카잔종합대학, 오데사대학등의 연구생들이 부자세습체제 및 개인숭배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각각 소환됐으며 비슷한 이유로 소환된 한 체코유학생은 평양에서 「우상숭배를 반대한다」는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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