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이후 북한 신정권의 공식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 타도를 주장하는 전단이 평양의 외교단지에 뿌려졌다는 보도가 루머성이 아닌 정통한 외교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옴에 따라 북한의 고위층 내부에서 권력승계를 놓고 암투가 일어나고 있으며, 권력승계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측은 지난 21일 북한의 중앙방송이 이례적으로 김정일 유일영도를 강조하면서 『대를 이어 혁명위업을 계승할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 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혁명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시점과 일치하기 때문에 권력승계를 두고 암투가 일어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결과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의 유일체제와 경제난을 견디지 못하고 귀순하는 북한주민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중에는 강성산정무원총리의 사위인 강명도씨 및 김일성대학 교수인 조명철씨 등 당고위층의 친인척도 포함되어 있어 김부자의 장기독재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점차 권력 상층부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외교단지에 뿌려진 전단의 내용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지만, 소식통에 의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세습체제는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전단을 만든 세력은 반사회주의 세력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반대하는 무리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문제전문가인 스칼라피노박사는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북한에는 동구, 러시아, 중국에 유학을 했거나 해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일단의 군인과 외교관 등 해외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바깥 세상을 경험하여 보다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새로운 엘리트 그룹이 수천명이 있으며, 이들이 김일성 사후에 변화의 목소리를 더 높이면서 시간이 갈수록 북한사회에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번에 전단을 뿌린 자들이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 무리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추이를 지켜볼 때 일단 북한내부에 갈등과 동요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이 김정일의 권력승계 과정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김일성은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여 김정일로 하여금 권력을 계승하도록 가능한 조치를 다 취하였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20년 동안 착실히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80년 10월에는 당정치국 상무위원, 당비서국 비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91년에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92년에는 공화국원수, 그리고 93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함으로써 당·정·군에서 권력장악에 필요한 직위를 모두 획득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정일은 친인척이나 동료 등 자신의 추종자들을 당·정·군의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권력기반을 다지는 한편, 국가안전보위부 등 정보조직을 장악함으로써 제도적으로 세습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따라서 전단살포 등 일련의 사태를 놓고 볼 때 현재 북한내부에는 김정일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는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들이 김정일체제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세력화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김정일체제의 공식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북한체제를 지탱해온 김일성의 카리스마와 미국에 대한 반제국주의 비난 및 대남 비방을 통한 내부결속이라는 두 기둥이 김일성의 사망과 북미 회담 및 남북정상회담 추진으로 무너지는 시점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맞물리게 됨에 따라 이러한 제반 상황변화를 극복하고 북한체제의 존립기초가 될 새로운 대들보를 북한이 만드는데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우리의 안보와 통일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여 지켜보아야겠지만 전단살포사건 등 최근 북한에서 표출되고 있는 내부동요의 움직임이 권력승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김정일은 이러한 전단살포사건을 내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여 김일성이 자행했던 바와 같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민족통일연구원 연구조정실장>민족통일연구원 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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