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흑자로 편성키로 한 것은 우리 경제의 경기과열 기미로 봐 적절한 선택인것 같다. 통상적으로 적자예산에 익숙해왔고 또한 성장정책을 추구해온 정부가 모처럼의 세수증폭의 기회를 맞아 이를 모두 지출하지 않고 일부를 절약, 채무를 상환키로 한 것은 경제를 안정기조로 이끌어 가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의 흑자재정 편성계획에 대해 민자당측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의 투자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균형예산을 편성할 것을 주장했으나 김영삼대통령이 정부의 입장을 지지, 정부로서는 이제 건실한 흑자예산편성의 책무만이 남게 된 것이다.
흑자규모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예측되지않고 있으나 약 7천억원 수준으로 잡고있다. 정부측의 입장은 꼭 써야할 돈을 쓰지 않고 흑자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지출할 것은 지출하면서 흑자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정재석부총리가 김대통령에게 지난 23일 보고한 예산편성 중간보고에 따르면 일반회계 약50조1천4백억원, 일반회계 및 재정투융자특별회계 합계는 54조7천7백억내지 55조원으로 올해보다 각각 15.9%, 15∼15.5%증가한 것이다. 이와같은 증가율은 지금까지의 평균예산증가율 14%선을 크게 초과하는 것이다. 이 자체가 팽창예산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국개발원(KDI)의 추산에 따르면 내년도 세입규모는 50조3천억원으로 금년도 예산대비 16.3%증가하는 것이다. 여기에 농특세 1조5천억원을 추가하면 총세입규모는 약51조8천억원으로 올해의 예산에 비해 19.8%가 증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돈이 잘 걷힌다고 몽땅 다 쓸 수는 없다. 내년에도 호황과 경제성장의 지속이 예상되므로 최대 경제현안문제의 하나인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남아도는 세입의 일부를 절약, 정부가 진 빚을 갚는 것이 정상적인 대응이다.
이러한 경제여건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흑자예산을 편성키로한 것은 재정을 통해 경기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재정의 경기 조절기능은 본질적인 기능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재정이 이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미국·일본·EU(구주동맹)등 선진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조절과 물가안정은 이 때문에 주로 통화정책이 맡아왔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듯이 물가안정도 통화(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공동전선을 펴면 훨씬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로서는 해외증권투자자금의 유입등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통화량억제등 통화정책만으로는 효율적으로 경기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정부가 기왕에 재정을 경기조절에 이용한다면 그러한 정책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번의 흑자예산을 일시적인 세수과잉을 처리하려는 일과성정책으로 다루어서는 안되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