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극 미룬채 후계강조 주목/순조진행/사전 정지작업/건강이상/승계해도 단명/권력암투/주석직은 양보/대외교란/정책혼선 노려 북한의 권력승계와 김정일의 건강등을 놓고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북한이 김정일의 후계자문제를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나와 주목되고 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한달보름 이상이나 「정권의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이는 여느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 따라서 북한상황을 놓고 정확한 정보나 분석은 없이 갖가지 추리로 설왕설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다. 이같은 상황에서 21일 북한 중앙방송이 논설을 통해 『당에 대한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만 놓고 북한 내부동향을 정확히 판단하려 한다면 분명 무리다. 그러나 20년 이상 후계구도를 구축해온 북한이 정작 김정일정권의 공식출범은 계속 미룬 채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 운운하면서 그의 후계문제를 또다시 거론한 것은 북한쪽 기류를 감지할 수 있는 몇가지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현재 북한의 내부동향은 한 마디로 「정중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그것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란 분석이 일단은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김정일의 건강이나 후계체제에 모종의 이상신호가 왔으며 이는 곧 북한의 권력암투등으로까지 비화될 소지마저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또 북한의 고도로 계산된 대외심리전술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현재 북한상황을 크게 4가지 시나리오로 압축하여 평가하고 있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외부의 온갖 억측과는 달리 북한은 독특한 암묵적 합의에 따라 김정일에게로의 권력승계가 별탈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확고부동한 것이며 다만 아래로부터의 충성심과 분위기를 결집, 화려한 축제분위기 속에 「등극」을 하기 위한 작업들이 스케줄대로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정부당국에 의하면 21일의 중앙방송 사설내용도 이미 92년 10월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47주년을 맞아 김정일이 발표한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해」라는 논문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 특히 중앙방송도 『수령의 후계자를 제때에 내세웠다고 해서 후계자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하고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번째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바로 김정일의 건강에 치명적인 이상신호가 왔다는 것. 이는 그동안 서방언론이나 소식통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돼온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 달 19일 김일성장례식 당시 TV화면에 비친 김정일의 모습은 초췌하다 못해 병색이 완연했던 게 사실이다. 또 김정일이 추도대회 이후 공식석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점이나 중국이 오는 10월 중국건국 45주년을 맞아 김정일을 초청한 것에 대해 김정일이 이를 거절했다는 보도는 그의 와병설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이 당장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건강 때문에 최소한 2∼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북한 내부의 권력암투설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즉 「신」에 가까운 카리스마를 휘둘렀던 김일성에 비해 김정일은 이같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며 일부 반대세력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것. 이럴 경우 김정일은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자리를 한꺼번에 차지하기보다는 당총비서직만 물려 받고 국가주석직은 혁명1세대등에게 배분해줄 수밖에 없고(반대의 경우도 가능) 이 과정에서 모종의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각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측 대북정책의 혼란을 노린 상투적인 대남교란용의 측면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우리 정부내에서는 김일성 사후 단시일 내에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이루어지고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분석했었다. 그러나 최근들면서는 북한의 「또다른 급변사태」를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으며 이러한 혼선의 과정이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자칫 잃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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