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찌는 더위는 서울을 닮았다. 몇십년만에 찾아온 폭염때문에 선풍기까지 처음으로 동이 났다고 한다. 연길시내를 가로지르는 냇가에서 한가로이 물놀이를 하는 동심이 흡사 60년대 한국을 생각케한다. 초저녁 중심가인 먹자골목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한글간판을 달지 않으면 벌금까지 내야한다는 연길은 이제 「외국」이 아니다.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은 「한국」이다. 억압받고 쫓기던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유서깊은 바로 그땅에서 「제2의 독립운동」인 조국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국내학자와 해외동포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에서 3차회담을 갖고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를 한 시기였다. 「94 연변국제학술토론회」에서는 김정일의 내일과 동북아평화와 경제협력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국경도시 도문땅을 밟으면서 두만강 저건너 남양시의 굶주리는 북한주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첫날 회의를 시작했다. 장소는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세워진 연변과학기술대학.
김진경총장은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 필요하다. 이제는 북한정권만 상대하던 사고에서 2천만 북녘주민을 먼저 생각해야 할때』라면서 개회사에서 「사랑주의」를 역설했다. 1992년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사립으로 세워진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중국내 조선족학생은 물론 단기코스로는 북한에서온 학생도 지도를 하고 있다.
김영훈목사(미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는 주제발표에서 『전환기적 상황에 처해있는 북한은 당분간 체제유지와 보전에 국가제일의 목표를 둘 것이다. 앞으로 질적인 변화나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그는 김정일에 대한 일방적인 과소평가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
토론자로 나온 이동욱교수(연변대학 조선문제연구소)는 『김정일체제는 2∼3년간 유지되는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기간에 어떠한 경제정책이나 개방의지를 보이는가에 따라서 붕괴나 계속집권이 결정될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주석 및 총비서직의 이양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미지를 국민의 마음에서 그렇게 빨리 지워버리고 싶지 않을 것같다』면서 권력분규는 없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유영옥교수(대한신학대교수)는 『이제 민족을 최상수의 개념에 놓고 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영국에서 참석한 장민웅씨(퍼모스트하우스대표)는 『말로만 통일 통일 하지 말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자』면서 「한국통일보험기금」을 제안, 먼저 미국·영국·일본등에 사는 해외동포들이 통일보험에 가입하는 운동을 벌여나가자고 역설했다.
통일로 가는 길은 ▲상대방 전략평가단계 ▲대화단계 ▲협력단계 ▲통일정책추진단계 ▲법령준비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정부는 장단기통일준비계획을 철저히 세울 때라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 모두는 중국땅을 거쳐 민족의 성산 백두정상에 오른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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