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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위상/이재승(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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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위상/이재승(일요시론)

입력
199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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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재벌그룹사이에 요즈음 삐걱거리는 소리가 높다. 정·관·경이 유착이나 밀착됐던 3, 5, 6공의 권위주의정권 아래에서도 재벌의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계는 목청을 낮추었었다. 3공때는 박정희대통령의 리더십과 비전에 재계는 순응·협력하면서 국가경제건설과 함께 그룹이나 개인으로서 부의 왕국의 기틀을 잡았다. 은행의 특별융자에서부터 토지수용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원이 따르는 정부정책에 원천적으로 불만이 있을 수 없었다. 재계로서는 황금기. 그러나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공개적인 표출은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 수출실적 1위를 차지했던 모 철강회사회장은 『채산이 맞지 않아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박대통령의 분노를 사서 졸지에 기업을 잃게 됐다. 5공때는 집권초기 중화학공업조정으로 기업에 따라서는 억울한 사업체의 상실을 강요당했으나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반 이후엔 재계는 권력과의 유착등으로 부의 증폭이 가능했다. 이 때에도 모 재벌그룹은 통상적으로는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 부도처리됐다. 결국 부실기업정리의 일환으로 공중분해, 같은 재벌그룹들에 넘겨졌다. 피해당사자는 「괘씸죄」때문이었다고 부당함을 지적했다. 여론도 동정했다. 세상이 바뀌어진 뒤 두 「피해자」는 법정을 통해 명예회복을 했다. 그러나 부의 회수는 별개의 문제였다. 6공때는 정치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으나 정·경유착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같다. 재계도 힘과 역량이 눈에 띄게 비약해 있었다.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토지초과이득세등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가 하면 재계가 강력히 반대하는 「유휴부동산」처분조치를 단행했다. 재계의 저항은 공공연했다. 일부는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 3,5공때 보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전통적으로 정·관에 대해 몸을 낮추어 왔던 재계가 뚜렷하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관·경사이의 위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재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의 92년 대통령선거 출마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국민당 창당과 30여명의 의원을 당선시켰고 그 발판위에 대통령자리에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부의 위력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의 정치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정명예회장의 권력 정상에의 도전과 실패가 재계전체의 립지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는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재계 또는 재벌그룹이 이제는 공룡과 같은 가공할 실체가 된 것은 확인된 것같다.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깨끗한 정부」 「깨끗한 정치」를 표방, 「정·경유착」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 재계를 아연 긴장시켰으나 집권 2년이 지난 지금은 개혁정책의 신선도도 떨어지고 재계의 경계와 기대도 크게 줄어든 것같다. 재계가 지금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재계의 「겸양」과 「타협」에 오랫동안 익숙해 왔던 관·정으로서는 「오만」과 「도전」으로 비칠 수 있다. 여론에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재계와 재벌그룹, 특히 5대재벌그룹은 엄청난 부와 그 영향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권력의 오만」이나 「총칼의 오만」처럼 미지수의 부작용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계의 권리행사로 볼 수도 있다. 재계라 해서 침묵을 마냥 요구당할 수는 없다.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면 홍보에 나설 수도 있다. 정치세력과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일 수도 있다. 현안인 삼성그룹의 승용차생산계획이나 현대그룹의 일관종합제철소건설계획등은 그룹으로서는 앞날을 건 야심적인 계획들이다. 정부로부터 기존업계의 생산능력이나 신·증설계획만으로도 공급이 초과된다는 이유에서 진입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양대그룹 모두 이를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고 있다. 세미나등을 통해 유리한 여론조성을 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도전처럼 비쳐져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권위가 상처입는다면 국정집행력이 약화된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계단체인 전경련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개정, 30대재벌그룹의 총액출자한도를 3년내에 순자산의 40%에서 25%로 축소키로 한데 대해 강력히 반론을 제기한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책대결이다. 그러나 이것도 정부경시로 비쳐지면 곤란하다. 우리 재벌그룹은 욕심이 너무 많고 집착이 너무 강한 것이 탈이다. 공익에의 배려와 타협적 자세, 부의 투명성이 다소 부족하다. 우리경제의 쌍두마차는 정부(국민)와 재벌그룹(기업)이다. 정부와 재벌그룹관계도 대립보다는 공정한 협력관계가 구축돼야겠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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