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장/“선심 아니다” 무상제공 배제/각국분담·상환조건 협의땐 신축대응키로 이홍구통일부총리는 지난 17일 『북핵문제의 해결은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되는 만큼 대북경수로 지원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전제, 『경수로지원이 추진되려면 남북간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해 경수로지원에 관한 우리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또 박건우외무차관은 같은 날 국회 외무통일위에서 『경수로의 무상지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경수로 지원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이 관련국간 비용분담 유상지원 우선고려남북간 직접협의라는 세가지 원칙으로 일단 정리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기본입장의 기저에는 「민족발전 공동계획」의 일환으로 한국형경수로의 지원을 관철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정부가 한국형경수로 지원을 고수하는 한편 미일에 대해 비용분담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현실론과 명분론을 모두 고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경수로건설비용의 상당부분을 결국 우리측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면서도 미일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내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명분이 약해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분담비율은 앞으로 관련국간 협의를 거쳐야 할 문제이나 3조2천억원에 달하는 경수로 건설비용중 최소한 60%이상은 한국이 부담하게 될 것으로 정부당국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와함께 정부는 재원출연의 방법으로 무상지원을 배제함으로써 대북 경수로지원은 하나의 커다란 「사업」이지 울며 겨자먹기식의 「선심」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또 유상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경수로지원이 갖는 정치적측면 이외의 경제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미일의 재정적 참여를 유도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실제로 한미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컨소시엄이 구성돼 분담액 및 상환조건의 협의가 이루어질 경우 가능한한 신축적인 태도로 임할 방침이다. 이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해오는 수준이나 대외개방 속도에 따라서는 경수로지원이 곧바로 남북경협과 연결돼 컨소시엄밖에서 상환조건이나 방법, 여타 사업과의 관련등을 남북이 독자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태성기자】
◎미 입장/명분·실리 다얻기 주력/국내정치 부담우려 법내세워 “지원불가”
미국정부는 현재로서는 40억달러에 달하는 북한의 경수로건설을 지원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3단계 제네바회담의 합의문은 「미국은 북한에 2천규모의 경수로들을 가능한한 빨리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명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그같은 「준비」란 다름아닌 재원 및 기술지원의 주선을 책임질 준비, 즉 간접참여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미국은 이같은 입장을 제네바회담 석상에서 북한측에 충분히 설명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측의 분담불가 논리는 원칙적으로 국내법상의 어려움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적성국 교역법 및 수출 통제법과 외국자산 통제 규정등은 물론 원자력법, 핵확산금지법, 핵공급국지침등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재정 및 기술지원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물론 북한이 완전한 핵포기를 국제사회에 서약할 수만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미국내법상의 제약들은 법개정이 아닌 대통령의 재량사항인 행정명령만으로도 손쉽게 해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은 현재 「이런 저런 나라들은 지원해 줄 수 없다」라는 식의 미국내법에 저촉되고 있는만큼 만일 북한 스스로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만 갖춘다면 미국의 직접지원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지원금분담을 꺼리는 이유는 법적인 문제 이외에도 국내정치 및 국민정서를 고려한 것이다. 소말리아나 르완다에 대한 원조도 『생돈을 들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판에 어제까지 「깡패국가」로 불렀던 북한에 대해 갑자기 수억달러를 지원한다는 게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에 경수로 분담금이란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고 있고 결국 이 문제는 한미간에 새 불씨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홍구통일부총리의 언급에 대해 미국은 「국내용」정도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매커리국무부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이와관련해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가들과의 협의를 조만간 진행시킬 것』이라고만 언급했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일 입장/「봉」 피하기 한국과 공감/서방공동책임 강조… 핵투명성 전제도
일본은 북한의 경수로형원자력발전소건설에 기본적으로는 협력한다는 방침이지만 거액의 자금제공에는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미국측이 「적성국가와의 무역을 금하고 있는 국내법과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규제등으로 북한에 자금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면서 한일양국에 필요경비의 전액을 부담시키려는데 대해 내심 불만을 품고 있다.
한국의 이홍구부총리가 17일 『북한경수로지원에 미국과 일본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일본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핵의혹문제는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핵확산금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전세계적인 관심사인만큼 한미일 3국은 물론 서방선진7개국(G7)도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의 나폴리에서 열린 G7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복구를 지원키로 합의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한일양국이 전적으로 떠맡기보다는 여러 국가가 십시일반으로 소액을 분담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분담금의 액수를 거론하기전에 북한핵문제의 「과거의혹」을 불식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미국측으로부터 제네바북미3단계회담의 협의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북한의 과거핵의혹문제에 관한 미국과 북한의 인식에 차이가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즉 미국은 북한의 과거핵의혹해소를 위해 특별사찰을 실시하는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북한이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녕변의 미신고 2개시설에 대한 사찰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일본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핵의혹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국민들이 용납할수 없기 때문에 우선 북한의 핵의혹규명에 한국측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분담금문제는 북미전문가회담후 다자지원의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도쿄=이재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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