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노동시장 장벽도 쟁점/“독·불 힘커진다” 우려까지… 금세기 실현 예측불허 단일국가로서의 유럽통합은 금세기 내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6월에 있었던 유럽의회선거의 투표율이 평균 56·5%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럽통합의 전도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통합유럽에 대한 유럽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유럽통합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유럽연합의 한 보고서는 단일시장계획이 모두 실현될 경우 4%의 경제성장과 1백80만명의 고용효과, GDP 2.2%에 해당하는 재정수지 개선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단일시장이 공식출범한 93년 이후의 상황은 전보다도 좋지 못했다. EU회원국들의 실질 GDP평균성장률은 91년 1.5%, 92년 1.0%에서 지난 해 마이너스 0.4%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91년 14.3%, 92년 16.0%에서 지난해에는 17.4%로 높아지는등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여기에다 회원국간의 견제와 갈등, 각종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도 유럽통합을 멈칫거리게 하는 요소다.
단일시장의 주요 내용인 노동시장의 개방은 영국이 거부하고 있다. 영국이 93년 11월 비준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노동부분에 가입하지 않은 주요 이유는 다른 회원국 국민들은 영어에 익숙해 영국에서 취업이 용이한 반면 영국 국민은 불어 독어등 대륙언어에 익숙지 않아 대륙에서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음용수 수질기준에 대해서도 영국 스페인 프랑스는 WHO기준에 맞추자고 주장하는 반면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 통일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1년 동구권지원을 목적으로 창설된 유럽개발은행(EBRD)은 독일의 동방정책을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로 영국에 본부가 들어섰고 초대 총재는 프랑스가 맡았다. EBRD에 가장 큰 돈을 내고 있는 독일의 심사가 불편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는 독일 프랑스의 지지를 얻어 일찌감치 새 집행위원장감으로 부상했던 벨기에의 드 한총리가 독불의 독주를 반기지 않는 영국의 견제로 룩셈부르크의 산티전총리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럽통합호의 순항을 어렵게 하는 것은 정치통합을 둘러 싸고 계속되는 주권침해논쟁이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은 화폐단일화등 경제통합 외에도 공동의 외교 안보정책 및 법무 내무분야의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정치통합의 주된 목적은 통상협상등에서 대외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상당수 회원국 국민들은 정치통합의 추진이 이미 유럽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줄지 모른다는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덴마크 선박회사 AP묄러사의 홍보담당직원 제테 클라우젠씨(여)는 『EU통합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을 위한 것이다. 유럽연합이 덴마크의 자치권을 규제할 수는 없다』며 이같은 기류를 뒷받침했다.【브뤼셀=고재학기자】
◎인증제도 상이/시장단일화 시행 걸림돌
유럽 백화점의 생활용품 코너를 가보면 아주 기괴하게 생긴 전기용품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유럽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플러그」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제품은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등 각국의 전기플러그 모양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EU의 앞길에는 통일해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공업제품의 표준제도조화문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지난 60년에 유럽표준화위원회(CEN 비전기분야), 지난 72년에 유럽전기기술표준화위원회(CENELEC 전기분야)등 민간표준화기구를 설립, 모두 1천9백여종을 표준화 했다, 하지만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표준 규격은 이보다 배를 넘는 4천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표준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인증제도다. EU국가들은 그동안 회원국 및 제품마다 서로 다른 인증절차와 인증마크를 통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CE」 마크는 EU가 EC(유럽공동체) 시절 만들어 놓은 인증마크. 그러나 나라별로 EC마크 운영지침이 달라 현재 통일작업이 진행중이다.
한 제품의 가격이 EU회원국별로 천차만별인 점도 「EU단일시장」이라는 목표와는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다. 휘발유 가격의 경우 당 벨기에 32.2벨기에프랑(약 1달러) 룩셈부르크 25벨기에프랑(약 0.8달러) 영국 61펜스(약 0.9달러) 프랑스 5.8프랑(약 1.1달러)등으로 각각 다르다. 또 미제 말버러담배 한갑의 가격은 벨기에 1백벨기에프랑(약 3.2달러) 독일 5마르크(약 3달러) 프랑스 15.5프랑(약 2.9달러) 영국 1.25파운드(약 1.87달러) 덴마크 23Z크로네(약 3.7달러)등이다.
이는 각국의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등 간접세율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자동차가격에 대한 부가세율을 보면 독일 15% 이탈리아 20% 벨기에 19.5% 그리스 18% 프랑스 18.6% 영국 17.5% 포르투갈 16% 덴마크 25% 아일랜드 21% 네덜란드 17.5%등으로 천차만별이다. 이런 간접세율의 차이는 EU권역내 자유무역을 사실상 가로막는 비관세장벽의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세문제는 각국의 재정·복지정책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단기간에 조정되기는 매우 힘든 문제로 여겨진다.
단일시장·자유무역을 지향하고 있지만 EU회원국들이 여전히 문을 꽁꽁 걸어 잠가놓고 있는 시장이 둘 있다. 공공조달시장과 노동시장이다.
EU공공조달시장은 연간 5천억에퀴(ECU·유럽화폐단위) 규모로 EU권역내 연간 총생산(GDP)의 10%에 달한다. 이중 물품조달과 건설분야는 지난 70년대에 EC에 의해 개발됐다. 하지만 현재 타회원국과 역외국 기업의 시장참여비율은 2%에 불과한 실정이다. EC는 지난 93년 1월을 기해 에너지 수송 통신 용수분야도 개방했지만 여전히 회원국들의 문턱은 높은 실정이다.【브뤼셀=김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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