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화기구」 가동됐지만 회원국 갈등조율에 어려움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의 한복판인 빌리 브란트가에 우뚝 솟아 도이체방크 코멀츠방크등 독일 유수은행의 본점 건물을 내려다 보는 듯한 유로센터 빌딩. 현재 독일경제공동은행이 쓰고 있는 이 45층짜리 빌딩에 오는 9월 EU 화폐통합의 산실이 될 유럽통화기구(EMI)가 입주, 정식 활동을 시작한다.
EMI는 유럽중앙은행(ECB) 창설과 유럽 단일통화 채택에 필요한 준비작업을 벌이는 한시적 기구로 99년부터 시작될 3단계 경제통화동맹(EMU)에 대비, 각국의 통화정책 조율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EMI의 출범과 활동개시는 EU경제통합의 마지막 단계인 화폐통합 작업이 드디어 본격화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화폐를 단일화한다는 것은 EU의 각 회원국이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그야말로 완전히 한 몸이 된다는 얘기다.
관세가 없어지고 각종 제도와 법규가 통일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평가척도인 화폐가 서로 다를 경우 결코 통합이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없다.
현재 한 외국여행객이 현금 1백달러를 갖고 EU 12개국을 차례로 드나들며 환전만 거듭할 때 마지막 나라의 공항을 떠나는 순간 손에 남는 돈은 70달러 남짓에 그친다. 이처럼 돈이 제각각인 상황에선 역내 다른 국가와의 거래는 내수시장 거래와 엄연히 서로 다르다.
결국 경제통합을 완성하려면 궁극적으로 화폐통합이 이뤄져야 하며 이 원칙에는 EU의 각 회원국들이 모두 의견을 같이한다. 문제는 어느 나라의 돈을 단일화폐로 삼을 것이냐 또 이 단일화폐를 관리하는 통합 통화정책을 펼칠 유럽중앙은행은 어디에 어떻게 언제부터 구성하느냐다.
독일 영국 프랑스등 EU 내의 강대국들은 유럽중앙은행의 전신격인 EMI의 위치를 둘러싸고 그동안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EMI가 자리잡은 도시가 바로 향후 통합유럽의 금융수도로 부각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EMI와 ECB의 위치가 프랑크푸르트로 확정되기까지 얽힌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마르크화가 아닌 제3의 화폐를 단일통화로 결정한 마스트리히트조약 내용이 발표되자 독일신문들은 일제히 『콜총리가 마르크화를 버렸다』고 법석을 떨었다. 반면 콜총리는 독일 분데스방크의 안정적인 통화관리능력을 배경삼아 집요한 노력을 펼쳐 프랑크푸르트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최종유치 위치가 확정되자 영국재무부나 영국은행은 『EMI가 어디에 자리잡든 유럽금융 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아쉬운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EMI가 입주할 건물을 독일 분데스방크 근처의 미군사령부로 정하려다가 나치정권에 결탁한 기업이 쓰던 곳이라고 국제적인 딱지를 맞았다. 또 프랑크푸르트 무역회관인 메세투룸이 한 때 유력하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현재 분데스방크가 이 건물의 40∼60층을 쓰고 있어 불발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EMI의 활동개시가 화폐통합을 향한 중대한 전기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통화단일화 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영국국민들은 『여왕의 초상화가 새겨지지 않은 지폐를 파운드화 대신 쓸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EMI유치 후 독일인들은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다. 연방경제부의 EU협력관 한스헤냉 폰모소씨는 『단일화폐가 마르크 아닌 ECU로 결정돼 다소 섭섭하다. 하지만 지폐의 한 쪽면엔 에퀴, 다른 면에는 영국여왕이나 클라라 슈만(1백마르크 지폐의 초상화 인물)을 새긴 돈을 각각 만들어 단일화폐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고 조크를 던졌다.【프랑크푸르트=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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