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주사파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보는 각도에 따라 갑작스러운 일같기도 하고 또는 새삼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대처럼 빠르거나 철저하지는 못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개혁이 상당히 진척되어 온 반면 북한체제의 파산상태가 가시권 안에 접어든 상황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점은 세상을 곱게만 보던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북한의 선전문구를 그대로 베낀 듯한 구호들이 대학가에 나붙기 시작한 것이 이미 거의 10년이나 되는데 주사파의 위협이 하필이면 이제 와서야 논의되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갑작스럽든 새삼스럽든간에 「철학」또는 「사상」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내용의 빈곤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주체사상을 자발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는 실로 개탄할만한 일이다. 정부는 주사파의 문제를 사법적으로 대응하여 「이적행위」로 처리할 뜻을 명백히 하고 있고 다수의 언론은 「더 많은 용기있는 교수들」이 나타나 이들을 꾸짖거나 설득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들은 우리 사회에서의 주사파의 존재가 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제시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문제의 원천적 해결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져 답답하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오해를 먼저 없애기 위해 「주체사상」이 우리 사회에서 발 디딜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점은 우선 지적 자존심과 관련되는 것이다. 원시적일 정도로 폐쇄적이고 전투적인 민족주의수사 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갖지 못하는 「주체사상」이 소수라고는 하지만 하여튼 우리 사회 속에서 「신봉」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 사회가 원래 갖고 있는 지적 불모상태 또는 반지성적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져 자괴감을 금할 길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자부한다. 각자가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가지면서 공존할 수 있는 체제는 민주주의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이한 가치체계가 공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들을 포괄하는 공약수로서 중심적 가치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원사회가 아니라 가치면에서의 무정부사회일뿐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는 오히려 후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 사회 안에 어떤 중심적 가치가 없다는 말은 바꾸어 말해 이러한 가치를 받들고 지킬 수 있을 만큼 도덕적 권위를 갖는 세력이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치적, 사회경제적 주도집단이 물리력이나 재력만이 아니라 다른 집단에 대한 도덕적 설득력과 권위를 갖지 못하는 사회속에서 나타나는 다원성은 무규범상태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사회적 다원성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 실제로는 무규범상태에 대한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해서 주사파가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와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북한과의 직접적 연계하에 활동하는 것이 의심되는데도 이를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정부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실제 겉으로는 「설마 그랬을라고」하면서도 속으로는 소위 주사파세력이 좀 그래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 문제가 분명히 사법적으로 처리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더 많은 용기있는 교수들의 꾸짖음」이 기대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주사파의 문제가 더욱 어려운 것은 지적 토론을 통한 설득도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사」가 갖고 있는 지식체계가 한심스러울 정도로 빈곤하지만 이론적 결함이 폭로되었다고 해서 신봉자들이 태도를 바꿀 수있는 그러한 수준의 철학이나 사상은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신봉되는 「주사」는 이성적 토의를 거부하는 좌절의 철학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좌절은,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주사」와는 무관하게 의외로 널리 공감·확산되어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 「주사」가 무서운 점은 그 이데올로기의 (빈곤한)내용이나 북한과의 연계성이 아니라 일체의 기성가치를 부인하는 허무성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주사파의 확산이란 「주사」신봉자의 수적 확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법적 대응의 대상자에 대해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연민의 정을 갖고 「정부의 탄압」을 비난할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동정이 확산되어 있는한 사법적, 즉 공권력적 대응은 법에 대한 존경심의 감소를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사용하면 할수록 그 (공권력의)위엄이 증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공권력 사용법이라는 점은 굳이 권력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짐작되는 바이다.
분명히 드러나는 불법행동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겠다. 그러나 이와 병행하여 특히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신의)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이 확산되는 점에 대해서 깊이 통찰하면서 혼돈된 사상의 문제를 그 뿌리에서부터 접근하는 사회차원의 노력이 한층 아쉽게 느껴진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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