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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어로 구체화한 구도정신 오규원 연작「물과 길」/김선학(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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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어로 구체화한 구도정신 오규원 연작「물과 길」/김선학(시평)

입력
1994.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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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이 「현대문학」 8월호에 발표한 연작시 「물과 길」 다섯편은 쉽게 읽혀지는 시가 아니다. 일상어를 시어로 선택해서 물과 길 그리고 산과 하늘, 남자와 여자의 이미지를 확연하게 지시해 준다. 그럼에도 이 시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것에 이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쉽게 읽혀지는 시들은 정감쪽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정감은 시가 처음부터 가져야 하는 구비요건이다. 시의 본바닥인 서정시의 「서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보다 확실해진다.

 아무래도 정감은 시인의 주관적인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든 심성의 표출이다. 시속에 담겨있는 시인의 주관적인 정감은 읽는 사람의 그것과 만나 감정이입이라는 객관화를 거치지 않을 때 감동으로 연결될 수 없다. 실패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시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오규원의 「물과 길」 연작은 정감에 치우쳐 있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세계에 대한 시인의 지적 천착과 관계하고 있다. 지적 천착은 정감적이기 보다 이성적인 영역이다. 그것은 시인의 치열한 구도의 시정신과 관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구도정신을 오규원은 일상어로 구체화하려 한다. 구체화된 이미지는 뚜렷하게 다가오지만 그것들이 떠올리는 세계와 삶, 그리고 존재에 대한 사색의 본질을 파악하기에 읽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는다.

 「물」이 의미하는 생명의 근원. 「길」이 말해주는 삶의 역동성 그리고 「하늘」로 표상되는 존재의 가능성과 유한성등을 해독하는 것은 많은 괴로움을 읽는 사람에게 안겨주기에 족하다. 언어를 다만 사물을 지시하는 기호로만 생각한 결과다.

 언어 자체가 이데올로기란 입장을 표명한 것은 바흐틴이다. 쉽게 읽히지 않는 「물과 길」의 연작시 다섯편이 가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통로를 여기서 찾을 수는 없겠는가. 언어는 항상 사물의 기호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오규원의 「물과 길」 연작시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구도정신을 표출한 시들이 갖지 못한 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의 지적 천착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은 존재와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한 시인의 사유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도록 시속에 흡입시키는 역할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정신주의, 명상시 또는 사상시라고 말해왔던 기왕의 지적사유를 담으려 했던 많은 시들이 관념의 늪에 빠졌던 것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한 성숙한 경지에 접어든 시인의 치밀하고 능숙한 솜씨와 그 깊은 사색의 자취를 그래서 읽을 수 있다.<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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