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경제팀 “조기 도입위해 도산만은 막아야”/사후지원대책도 없이 “주공인수” 성급한 결론/이경식 전부총리 등 “조속처리” 주장 (주)한양의 산업합리화업체 지정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데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속사정을 이해하려면 지난해 5월 한양의 부실기업정리문제가 본격 거론되어 주공인수가 결정된 바로 그 시점에 이경식부총리(당시)와 홍재형재무부장관이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금융실명제실시를 준비하라』는 특급밀명을 받고 개인적인 정책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 경제계와 금융계는 하루 평균 10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는등 국내 경기가 극도로 침체된 상태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경우 국민경제가 결딴날 것이라며 실명제 조기실시를 반대하고 있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전부총리와 홍장관은 국가적 대사인 금융실명제실시 성공이라는 오로지 한가지 정책목표를 위해 우선 한양의 도산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속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한양을 주공에 인수시키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며 『경제침체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한양이 부도처리될 경우 금융실명제의 조기시행(93년8월)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가 무리없이 시행되고 있고 경제가 살아난 지금에 와서야 한양을 도산시켰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한양도산은 곧 경제자살행위였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사회적으로는 사정의 칼날이 번득였고 재계에도 사정한파가 세차게 몰아쳤다. 수천억원의 세금탕감이 수반되는 합리화업체 지정은 입도 벙긋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에서 한양의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에 대한 한은특융지원이나 특별증자허용등을 제기했으나 묵살되고 말았다. 이전부총리와 홍장관이 한양의 경영정상화방침을 결정할때 합리화업체지정도 동시에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상황논리상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박재윤청와대경제수석이나 고병우전건설부장관 김명호한은총재는 물론이고 기획원 재무부등 관계부처의 고위실무자들도 금융실명제 조기실시방침은 까맣게 모르고 있던 처지여서 특혜소지 완전배제라는 원리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전부총리는 최근 정부당국자와 만나 『한양을 주공에 인수시키기로 할 때 합리화업체지정문제가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더라도 주공인수를 결정했을 것』이라며 『내가 부총리를 계속 하고 있다면 한양의 합리화업체지정을 조기에 매듭지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부총리는 또 기자들과 만나서도 현 경제팀이 한양문제를 조기에 처리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몹시 못마땅해 하는 발언을 자주 하곤했다. 재무부가 한양의 합리화업체지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전부총리는 장외에서, 홍장관은 장내에서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전부총리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정재석부총리는 한양의 합리화업체지정여부를 놓고 지난해 5월의 상황론과 현재의 당위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정부정책의 일관성유지나 경제현실을 감안하면 합리화업체지정이 필요하지만 막상 합리화업체로 지정하자니 부실기업정리의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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