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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고발정신의 정립/이현재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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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고발정신의 정립/이현재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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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부 여러 부서에서 각각 그 기구의 기능과 관련된 각종 신고센터를 설치했다는 홍보를 자주 하고 있는 것을 접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기는 하나, 어쨌든 이것은 관청 기타 부서에서 국민으로부터의 의견청취나 정보수집활동을 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런 활동들은 공조직이 갖는 정보활동 범위의 제약을 극복하고, 다양한 감각을 지닌 다수인으로부터 행정상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작금의 세태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보게 된다. 그러한 기관들에서 접수되고 있는 신고내용들이 얼마만큼 건설적이고, 질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들인지는 아직 들어볼 기회를 가져 보지 못했다. 만약 신고된 내용이나 접수되는 정보가 고작 교원의 돈봉투거래 정도의 내용이거나, 공공기관이나 공직자의 사소한 비이정도의 것이거나, 경찰이나 세관당국등에서 포착될 수 있는 성격의 것 정도라면 그 의의는 크게 감쇄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역작용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독일인의 고발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 오고 있다. 이 말을 들어 오면서 우리는 고발정신과 밀고근성에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고발정신은 어디까지나 사회광정의 정신이 사회적으로 깔려 있으면서 확고한 입증능력과 당당한 증언의사가 전제되는 것이라야만 할 것이다. 이 두 전제가 결여된 고발이란 결국 비열한 밀고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고발정신은 성숙도가 높고 공동체의식이 강한 사회에서 비로소 선의의 실효를 거두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객관적 공정관을 결여한, 이기적 불만에서 오는 밀고행위, 투서행위등을 모두가 고질적 병폐로 우려하며 자주 지적해 오고 있는 터이다. 어찌 보면 역사적으로 오랜 유교사회에서 반유교적인 당쟁·사화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병폐에서 연유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국가발전과 사회적 능력의 신장도 크게 이룩되고 있는 계제인 만큼 우리의 고발정신도 그에 걸맞게 성숙되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서, 흔히 듣는 복지부동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이를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원인과 대책에 관해서는 책임있는 당국에서 검토해 오고 있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적어도 그 원인의 하나는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고발분위기 내지 밀고분위기에도 있지 않을까 한다. 더구나 정부의 관료와 사회의 기강확립을 위한 사정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정당한 고발도 있겠으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에 편승한 이기적 모함의 발호도 배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공직사회, 기업사회, 기타 모든 사회영역에서 상위직급이 될수록 책임있는 선택행위를 많이 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인사·사업전개등과 관련해서 크고 작은 선택적인 결심을 자주 해야만 한다. 이때 선량한 관리자로서 합법·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해도 소속원이나 관련 당사자에게 유리·불리가 생기고 만족도에 차등이 생기는 사례를 보게 된다. 그 조직의 집단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그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의사결정자의 판단과 업무의 수행에 있어 적법성과 합리성에 하자가 있다면 의당 이에 대해서 엄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발이나 밀고가 두려워 어떠한 조직이나 사회가 위축되는 풍토가 조성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공직사회나 어떤 사회영역이든 법을 두려워하면 언제나 즐겁고 공도의를 기만하면 언제나 근심스러워하는(구법조조낙 기공일일우 「명심보감」) 풍토가 되어야지, 고발이나 투서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고발정신의 성숙이 그 기본적 토양이 될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고발정신의 함양과 구김없는 민의수렴을 위해서는 우선 정부당국에 의한 유도의 선항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즉 정부당국에서는 모함이나 무고적 성격을 띤 투서·밀고등에 대해서는 수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엄격히 규제하고, 요건을 갖춘 생산적 고발에 대해서는 이를 존중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관례의 축적이 요긴할 것으로 본다. 이것은 신뢰사회의 건설과 공직사회를 비롯한 모든 사회영역에서의 적극적 자세의 유도를 위해서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각종 신고센터등은 단기적 첩보가치나 정보가치는 희생하더라도, 국민창안 수렴의 역할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느낌이 든다. 장기적으로는 사소한 비리의 적발에서 얻는 순기능보다 사회불신풍조를 조장하는 역기능이 더 커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정부기관들은 각각 보유한 권한·전문성·인력 자체를 활용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기능적으로 충분히 수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국가발전을 이룩하면서 성숙된 고발정신 창달은 국민화합과 아울러 사회정화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믿는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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