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서류 빼돌려 증거찾기 애로/한국과 협조에 한계… 수사장기화 가능성도 경윤·경정사업과 관련해 거액로비설을 폭로, 파문을 일으킨 재일교포실업가 박영수씨(71·일본명 나카야마 야스지 산중보이)에 대한 일본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경찰은 채권단의 고발을 접수하고 박씨가 처음에 한국의 경륜사업을 위한 거액로비설을 밝혔다가 뒤에 일본기자들에게 이를 번복한 것을 중시, 그의 발언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 사건해결의 키라고 보고 이 부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일본흥업의 채권단이 박씨를 고발한 혐의는 상법상 특별배임과 외환관리법위반(무신고 송금)등 2개 죄목이다. 오사카경찰은 이 고발사건이 한일 두 나라를 오가며 이루어진 행위인데다 한국 정·관계에 거액의 로비자금이 건네졌다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워두고 있지만 로비설을 입증할 만한 증거확보가 쉽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다.
수사가 어려운 것은 채권단의 기초조사에서도 이미 드러났지만 박씨는 파산직전 사업관련서류 및 각종비용 지출서류등 핵심문서를 모처로 빼돌렸거나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가 파산선고직전 자금의 사용처를 추궁당할 것을 우려, 계획적으로 서류를 없앴다고 보고 있다.
오사카경찰은 채권단이 확보하고 있는 10여장의 영수증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영수증은 채권단의 자금사용처 추궁에 견디다 못한 박씨가 『89년께부터 92년에 이르기까지 로비자금으로 건네주고 받은 영수증』이라며 제출했던 것. 그러나 이 영수증도 「일본흥업의 돈이 한국으로 불법송금됐음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외환관리법위반 혐의를 입증할 증거 밖에는 안되고 로비설의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일본경찰의 수사초점은 불법송금 자체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로비부분이기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이어서 수사관의 파견도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한국과는 사법공조조약이나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수사협조의뢰는 가능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확보돼 있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 막연하게 수사를 의뢰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본경찰은 설사 박씨가 자진출두하더라도 한국에서의 로비설은 부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의 신병확보문제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박씨는 지난 4일 밤 일본기자들에게 외국의 카지노에서 대부분의 돈을 날렸다며 50억엔 로비설을 부인하고 잠적한 상태. 그는 일본경찰의 출두요구를 피해 한국이나 제3국에서 장기체류하며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오사카경찰은 박씨가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로비사실을 거짓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돈을 보내 모종의 사업을 꾀하다 결국 파산하자 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액을 로비에 사용했다고 둘러대 파문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당초 파문과는 달리 「한 교포빠찡꼬업자의 외환관리법위반사건」으로 싱겁게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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