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적 대응” 한·미 긴밀공조/「경수로 지원 남북대화」 타진 한미 양국이 북한핵문제 해결의「마지막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는 북미3단계고위급회담이 5일 재개됐다. 정부는 이미 김삼훈핵대사등 정부대표단을 제네바 현지에 파견해 미국측과 긴밀한 협의채널을 유지토록 했고, 5일에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북핵대처방안을 최종 점검했다. 정부는 특히 이번 회담이 김정일체제에서의 북한 핵정책 변화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대사등 정부대표단은 4일 로버트 갈루치미국무부차관보등 북미회담 미국측 대표들과 가진 비공식 협의에서 한미공조체제 유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우리측 입장을 전달했다. 한미 양국간에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제시할 포괄협상안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에 이날 협의에서는 북한측 태도 여하에 따른 가변적이고 신축적인 전략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그러나 이같은 신축적 대응방침에도 불구하고핵연료봉에 대한 조치대북 경수로지원 방안북핵의 과거투명성 확보방안남북관계의 진로설정등에 있어서는「원칙의 관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북미회담의 최대쟁점으로 떠오른 북한 핵연료봉의 처리와 관련해서 정부는「재처리 절대 불가」방침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 안전성을 내세운 북한의 주장에 밀려 재처리를 허용하게 될 경우 한반도비핵화선언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핵연료봉 재처리문제는「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임을 미국측에 확인시키는 한편 영구폐기, 제3국 이전, 보존기간 연장등의 방안을 놓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과 긴밀히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흑연감속로에서 인출된 핵연료봉의 보존기간연장에 관해 영국에 기술자문을 요청하는 한편 중국 러시아등에 인수의사를 비공식 타진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개발동결의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경수로원전 문제에 있어서도「한국형 원자로」를 지원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부는 이와관련, 이번 북미회담에서 경수로지원문제가 타결의 실마리를 찾을 경우 남북한간의 직접 대화를 포함, 관련국들간「경수로 지원 실무대책회의」를 추진할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전달해 놓고 있다.
북한핵의 과거투명성 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이 사안이 북핵문제를 국제문제로 촉발시킨 이후 한번도 변화된 적이 없는 철칙에 속한다. 문제는 이를 관철시키는 방안인데 정부는 과거투명성문제가 결국 이번 회담이 상정하고 있는 철저하고 광범위한 해결의 마지막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번 특사교환조건의 철회 이후 북미회담을 남북대화와 연계시키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북미회담이 북미관계의 전반적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특수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점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북미관계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전통적인 대북정책이고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도 남북대화의 재개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고태성기자】
◎양측 “기존입장 불변” 강조/제네바 북·미회담 표정/갈루치, 한국등에 매일 결과설명… 보안요청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으로 중단됐던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이 28일만인 5일 제네바 주재 미국대표부에서 재개됐다. 상오 9시 40분 미대표부에 도착한 강석주북한수석대표는 입구에 나와 있던 미대표단원과 악수를 나누고 곧바로 회담장으로 입장.
강대표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비교적 밝은 편이었으나 지난 7월회담 때와는 달리 회담전망을 묻는 보도진들의 질문공세에 아무런 답변없이 가벼운 인사로 대신. 또 갈루치미수석대표는 강대표를 입구에서 맞지 않고 약 10분후 회담장에서 인사,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첫날 회담은 하오 6시 넘어서까지 진행됐는데 양측 수석대표등은 오찬회동을 갖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타진. 북한측은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기존 입장은 불변임을 강조, 협상이 7월회담 때 제시했던 양측의 기본입장 선상에서 진행될 것임을 엿보이게 했다.
○…갈루치대표는 회담 시작전 단독으로 잠시 보도진들과 만나 『7월에 논의가 중단됐던 문제들이 다시 다뤄지기를 바란다』며 『오늘 회담은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분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회담전망에 대해 『낙관 비관등 미리 예측하고 싶지 않다』며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갈루치대표의 이 발언은 『회담 전망을 낙관한다』고 밝혔던 7월 회담시작 때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한 반응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큰 현안은 역시 북한이 냉각수조에 보관중인 폐연료봉의 처리문제. 북한은 폐연료봉이 8월을 넘기면 방사능 누출등 안전상 위험해 재처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위험요인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재처리의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는 방법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측통들은 북한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은 핵카드인 폐연료봉을 지하에 매장하거나 제3국에 판매 또는 위탁보관하는 방식을 수용하지 않고 보관기술 제공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나 한국도 이를 구태여 반대할 이유는 없으므로 폐연료봉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일단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재개된 회담이 기본적으로 7월회담의 연장이기는 하나 조문파문과 귀순자 회견, 좌경세력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처등 김일성 사후 긴장된 남북관계가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어 회담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김삼훈핵대사는 이날 갈루치대표와 만나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남북대화의 진전을 북한측에 강력히 요구할 것을 요청하고 이와 함께 북한핵의 과거 투명성 규명부분도 묵인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루치 대표는 매일 회담이 끝난 후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에게 회담결과를 설명키로 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에 대해 보안을 지켜줄 것을 요청,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 때까지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협상 진행상황과 결과를 알 수 없을 것같다.【제네바=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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