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줄었지만 신종기법 은밀히 동원/로비이스트들 인사서 전문인사에 밀려/중기 자금조달에 상호·수탁보증등 변칙 금융실명제는 1년이란 짧은 세월동안 기업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대기업들이 느낀 실명제 1년은 「초기 불안, 점차 무감각…」인 반면 중소기업들이 체감한 실명제 1년은 「돈가뭄」으로 요약된다. 대기업들이 실명제로 인해 투명한 경영을 지향하면서도 때때로 실명제의 그물을 빠져나가며 잇속을 챙기는 동안 신용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실명제로 구하기가 힘들어진 자금동원을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내고 있다.
○…현대 대우등 주요그룹들은 영수증 없는 비용지출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침을 정했다. 현대그룹은 특히 간이영수증보다 임의 조작이 어려운 카드영수증 사용을 권장하는 바람에 법인카드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또 거래마다 매번 이서하고 위임장과 사업자등록증사본등 서류를 지참해야하는 번거로운 실명확인절차 때문에 코오롱그룹의 경우 자금담당 실무자들이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이름등을 한꺼번에 새긴 고무인을 만들어 갖고 다니는 새로운 풍속도 생겨났다. 유관기관과 거래처에 대한 명절선물을 감사편지등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대정부 로비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사라지면서 기업인사에서 로비이스트가 뒷전으로 밀리고 마케팅 생산등 전문분야에서 대거 발탁인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실명제로 인해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비자금의 조성과 관리. 모든 거래가 투명해지면서 기업체 비자금의 규모도 대폭 줄었다. 기업마다 그동안 비자금에 크게 의존해 온 접대비를 가능한한 줄이고 관련조직의 축소, 내부감사의 강화등을 통해 비자금의 조성을 자제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경우 최근 감사팀을 발족,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사전 방지하고 있다. 정치자금 요구가 사라진 것도 비자금을 줄이는데 한몫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금이 크면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자금을 조성하더라도 액수면에서 상당히 적어진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자금조성은 과거보다 어려워졌을 뿐 근절되지는 못하고 있다는게 재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써야할 곳은 많은데 법적으로 보장된 접대비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명제 실시 이전에 친인척 및 회사임직원 명의로 분산돼있던 비자금은 여전히 차명상태로 남아 음성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그룹의 자금담당 임원은 『납품단가를 조작해 차액을 챙기거나 해외법인이나 지사를 통하는 이전가격조작, 계열기업간 내부거래, 실제와 영수증을 다르게 해 차액을 챙기는 2중계약, 단순노무자의 인장을 위조해 임금을 지급한것처럼 꾸미는 방법등 기존의 비자금 조성방법이 현재도 상당부분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임직원들의 퇴직금에 얹어 빼돌린 다음 일정기간 예치한뒤 비자금으로 쓰거나 법인의 휴면계좌를 이용하는 방법등 신종기법도 은밀히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세원노출을 피하기 위해 현금거래를 통한 무자료거래가 여전히 계속되고 문방구어음등 새로운 회피수단이 생겨났다. 또 신용도에 따라 자금사정이 차별화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다 도산하는 영세업체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 1·4분기 중소기업의 사채의존도가 22.7%로 실명제실시직전인 지난해 2·4분기(21.7%)보다 높아진것도 중소업체의 자금난을 짐작케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상호보증방식이나 수탁보증(사채업자가 대출기업을 지정, 금융기관에 거액을 예치하고 대출기업으로부터 고액의 커미션을 징수하는 한편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대출상환을 연대보증하는 방식)등 변칙거래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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