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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무더위·불황에 부패파문까지… 짜증의 여름(지금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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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무더위·불황에 부패파문까지… 짜증의 여름(지금 이곳은)

입력
1994.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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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여름은 주인을 잃은 개와 고양이, 그리고 관광객만이 지킨다는 얘기가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 그 만큼 프랑스 사람들이 바캉스를 즐긴다는 비유다. 바캉스란 단어는 원래 불어고 그 뜻은 비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점차 거짓말이 돼 가고 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십 수년만의 무더위가 파리를 덮치고 있지만 파리 시내는 여전히 파리지엥(파리시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남으로 남으로 달리는 태양의 고속도로에 캐러밴(캠핑 카)의 행렬은 매년 크게 줄고 있다.

 르 피가로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바캉스를 계획한 프랑스 사람들은 절반을 약간 넘는다. 응답자의 43%가 바캉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바캉스 기간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 보통의 휴가기간인 4주 이상을 가는 사람은 불과 10명중 한 명이다. 대부분 1∼2주 정도다. 쥐에티스트(7월족)와 우티엥(8월족)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옛 말이 되고 말았다. 7월말과 8월초에 돌아오고 떠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만남으로 몸살을 앓던 4번 고속도로가 올해는 큰 혼잡이 없다. 대신 센 강변과 도심의 공원에는 허리 위를 다 내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이 북적거려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후 최악이라는 불경기 탓이다. 실업률이 13%를 넘고 20대 청년 4명중 1명은 일자리가 없다. 발라뒤르정부는 온갖 묘책을 다 짜내고 있지만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바겐세일이 끝난 프랭탕과 라파예트백화점에는 엔고에 편승한 일본인 관광객들만이 가득하다. 실의에 젖은 프랑스 젊은이들은 샹젤리제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도시범죄율은 높아가고 극우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프랑스의 여름은 더욱 덥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더위 뿐만 아니다. 줄줄이 터져 나오는 전현직 각료 정치인 기업인들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전현직 각료만도 10여명. 이달들어서만 알랭 카리뇽 통신장관과 모리스 아렉스 상원의원의 스캔들이 매일 지면을 채우고 있다. 언론매체정책을 다루는 카리뇽장관은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그러노블시의 용수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한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 그 기업은 그의 정치운동을 돕는 목적으로 창간된 지방신문에 7백만프랑(약 10억원)의 뇌물을 주었고 여기에 그가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17일 사임했다.

 이렉스 상원의원은 툴롱시의 학교건설계약과 관련, 약 1백50만 프랑(약 2억원)의 커미션을 받은 혐의다.

 이밖에 중량급 정치인인 제라르 룽게 산업장관과 전 통상장관인 미셀등이 횡령혐의로, 기업가인 베르나르 타피 하원의원이 탈세로 조사를 받고 있거나 구속될 처지에 있다.

 프랑스가 제2의 이탈리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자탄의 소리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부패는 중앙정치인 뿐 아니라 지방정치인·관리들 사이에 폭 넓게 만연돼 가고 있다. 그러나 젊고 사명감에 불타는 예심판사들은 정치적 위협에 굴하지 않고 부정부패를 파헤치고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마니 폴리테(반부패수사)를 주도하는 치안 판사들처럼 국민과 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13년 집권한 미테랑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부패를 다룬 「미테랑과 40인의 도적들」이라는 책은 올 여름의 베스트셀러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바캉스를 잃은 많은 프랑스인들은 이 책으로 휴가를 대신할지 모른다.

 파리의 무더위가 지나가고 우기가 시작되는 가을이 오면 프랑스는 내년 봄의 대통령선거 전초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을 것이다. 우파의 발라뒤르총리와 시라크 파리시장, 좌파의 들로르 유럽연합집행위원장과 로카르 전사회당 당수를 놓고 후보지명전과 좌우파의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대선정국의 이슈는 물론 실업과 부정부패일 것이다.【파리=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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