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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연재를 마치며/조정래/“수난의 식민지역사 외면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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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연재를 마치며/조정래/“수난의 식민지역사 외면말아야”

입력
199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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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통해 민족자긍심 회복/사랑으로 읽어주신 독자께 깊은 감사” 「태백산맥」을 쓸 때의 일이다. 내가 10권 분량의 긴 소설 중에서 마지막 2회분 연재를 남겨놓았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위암 투병을 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살아 생전에 「태백산맥」이 완성되는 것을 보기 원했고, 나는 마지막 2회분째의 절반을 조금 넘게 쓰고 있다가 아버지가 숨을 거두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결국 나는 소설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떠나신지 5년이 넘은 지금까지 가슴저리게 남아있는 것은 내가 저지른 불효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아버지가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이해와 사랑이다. 아버지는 6개월 남짓 병원에 계시면서 자식들을 날마다 보기를 원했다. 그건 당신이 암인 것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이었고 자식들에게 요구한 의무이행이었다.

 그런데 4남4녀 8남매 중에 유일하게 그 의무를 면제해준 자식이 있었다. 그 특혜를 받은 것이 바로 나였다. 소설 쓸 시간도 모자랄테니 소설이나 열성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 특혜가 불효로 끝나버릴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국일보에 4년에 걸쳐 새로운 대하소설 「아리랑」을 연재하기로 해놓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아버지였다. 그건 그리움 때문도 아니고 죄의식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하는 식의 의지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사회 과목을 배우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36년 동안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모든 동포들이 일본사람들에게 짓밟히며 수없이 죽고 고통을 당했다는데 책에 나온 것은 고작 안중근 의사요, 유관순 누나에 33인 정도였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다 무엇을 하고 당하고만 있었단 말인가? 이것이 내가 갖게 된 의문이었고, 나는 마침내 선생님에게 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사범학교를 갓나온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건방진 놈, 담에 크면 알게 된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그 의문을 풀어줄 답은 그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 의문은 심화되고 확대되어 나갔다.

 문학을 하자고 대학을 가고, 작가라는 직업 아닌 직업을 얻게 되면서 나는 그 의문을 나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차츰차츰 깨달아가게 되었다. 그 깨달음의 매듭매듭에서 작은 의문이 풀리면 좀더 큰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이 풀리면 그보다 더 큰 의문이 생기는 세월을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식민지시대를 꼭 소설로 써야 한다는 결심을 굳혀가게 되었다.

 나는 이미 연재를 시작하면서 「아리랑」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밝혔고, 연재 중간중간에 기획된 특집지면을 통해서도 다시 밝히곤 했다. 그건 한마디로 줄이자면, 우리 모두가 식민지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굴욕감과 열등감, 수치심을 진실한 역사 사실들을 통해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였음을 확인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민족적 긍지감과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의 20대 이상은 유태인의 학살에 대한 영화나 TV드라마를 줄잡아 10여편씩은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슬픔과 감동에 젖어 유태인들을 편들고 독일군을 증오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유태인들과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박해를 받고 학살을 당한 우리의 역사는 외면해 왔다. 이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나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원고를 미리미리 써서 화가나 담당기자를 속썩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궤양이 생겨 20여일이나 연재를 중단하는 사고를 저질러 한국일보에 누를 끼치고 독자들에게 결례를 범했다. 뒤늦게 사과를 드린다.

 긴 세월 4년동안 귀한 지면을 내주신 한국일보에 감사드리며 내 졸작이 독자들에게 읽혀지도록 궂은일 맡아주신 한국일보 가족 여러분들께도 큰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졸작을 사랑으로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린다.

 한국일보의 끝없는 발전과 독자 여러분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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