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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접경지역서 본 김일성사후의 북한/본보 이준희기자 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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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접경지역서 본 김일성사후의 북한/본보 이준희기자 현지르포

입력
199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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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내부 뭔가 흔들린다” 변화 체감/혁명구호 시들… 관심 온통 경제뿐/“체제위기 예상외 빨리올 것” 급박감/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못느껴… 조선족들 “북 앞날에 회의적”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한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은 북한 일반주민의 적나라한 생활모습과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또 광범위하게 접할수 있는 곳이다. 연변지역만해도 20만이 넘는 중국조선족 대부분이 북한에 친척들을 갖고있어 매년 한두차례 이상씩 북한내륙 깊숙이까지 여행하고 수시로 보따리장수꾼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간혹 신분이 보장된 북한주민들이 거꾸로 중국의 친척들을 만나기위해 중국쪽으로 건너오기도 한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 인연을 갖고있기때문에 기본적 정서가 친북한적일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통해 접하는 북한의 생활모습은 상상을 넘을만큼 참혹하다.

 중국조선족들이 북한을 설명할때 으레 사용하는 말은 『차마 사람 살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원이기도한 한청년은 몇년전 북한에 생필품을 싸들고 보름예정으로 장사를 하러 들어갔다가 일주일만에 뛰쳐나왔다고 했다. 『제대로 음식을 먹지못해 더있다간 돈이고 뭐고 배를 곯아 죽을 것같았다』는 것이다.

 곧이 믿기지않는 이런식의 참상은 중국국경지방에 사는 조선족 누구를 만나든간에 쉽게 전해들을수 있다. 막연한 전문이 아니라 생생한 체험담들인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북한주민들이 하루 세끼의 기본식생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극한적인 경제난을 겪고있다는 것은 부인할수없는 정확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가 먹을 것이 없어 친지방문조차 단절하다시피하고 힘을 아끼기위해 일을 나가도 가능한한 덜 움직이려고 든다든가 러시아벌목장같은 곳에서 귀국하는 노동자가 모자밑 머리속에 설탕가루를 잔뜩 숨겨들어가 집에서 털어먹는다든가하는 따위들은 중국인이나 현지 조선족들에겐 더이상 기막힌 얘깃거리도 아니다.

 함남에서 남편과 함께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있어 친척방문을 위한 중국여행비자까지 얻을수 있었던 북한의 한 50대 엘리트여성도 체제선전에 열을 올리다가 『굶주리고 사는걸 다아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느냐』는 손위어른의 힐난에 얼굴을 붉히며 말문을 돌렸다.

 북한의 실상이 충격적일수록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체제속에서 무려 반세기나 변함없이 유지됐던 김일성의 정치적 권위이다. 북한의 사정을 잘알고 중국땅에서 모택동시대에 문화혁명등 유사한 경험을 했던 이들은 최악의 경제상황 속에서도 김일성체제가 유지될수 있었던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김일성의 독특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꼽는다. 당언론기관에서 일하는 김모씨(51)는 『조선인민은 이해할수 없을만큼 김에대해 진심어린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며 『물론 거기에는 일제시대 항일활동과 조선건국, 해방전쟁, 전쟁후 일정수준의 경제재건등에 대해 북한당국의 과장되고 집요한 선전이 큰 역할을 했던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일성개인에 대한 존경심은 경제실패등도 자연스럽게 「수령님 잘못이 아닌 밑의 사람 잘못」으로 돌리게하고 심지어 주민들이 『수령님이 몰라서 그렇지 알면 우리 인민을 이렇게 못살게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며 인민과 수령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인의 장막」을 안타까워하는 희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밖에 철저한 폐쇄·공포정치, 두사람만 모여도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극단적인 감시정책등과 함께 모든 질곡의 원인을 미제등 외부로 돌리는 교묘한 선동술이 합쳐져 김의 권위 유지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국경지방에서는 북한의 상황이 김일성의 사망이후 급변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앞서 지적된 북한체제유지 요인들은 사실상 모두 김의 상징적 이미지가 북한주민들의 머리속에 형성돼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김일성의 사망과 함께 이러한 정책들 자체의 약효가 급격히 떨어지리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상황변화의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북한을 여행한 이들은 김일성사망전과 이후의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고 한결같이 얘기하고 있다.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거의 감시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으며 가장 업무태도가 살벌하기로 악명높은 국경해관(해관)요원들도 두드러지게 긴장이 풀려있음을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더이상 혁명구호따위에는 관심을 갖고있지 않으며 화제도 온통 앞으로 경제가 나아질 것인지에만 쏠려있더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제대로 배불리 먹게될지를 주시하고 있을뿐이라는 것이다.

 한 조선족 장사꾼(54·여)은 『어디가도 북조선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는 김정일체제가 어찌될지등의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오로지 중국인들처럼 돈벌어 잘 사는 방법에만 관심들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런 말들을 나눌때도 전같으면 당장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살폈을텐데 전혀 주위를 의식치 않아 도리어 내가 놀랄 정도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함남 함흥에서 중국 연변의 친척을 만나러온 북한주민은 김정일체제의 전망을 묻자 『어쨌든 뱃속과는 타협할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인민을 제대로 먹일수 있느냐가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말이다.

 이들이 전하는 분위기에는 적어도 평양에서 도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지도자동지에 대한 충성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북한주민들이 김정일이외의 어떠한 지도자를 상상해본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김일성에 대한 심정적 추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였다. 한 조선족 학자의 표현처럼 『김일성은 맹목적 추종의 대상이었으나 김정일은 이제 평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느껴졌다.

 중국쪽의 관측통들은 이때문에 권력은 승계했으나 개인적 권위는 물려받지 못한 김정일이 앞으로 이같은 달라진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다면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연변지역의 조선족인사들은 그러나 북한체제의 전망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또다른 학자는 『김정일체제가 유지되려면 전통적 폐쇄정치와 개방을 통한 인민의 욕구충족이 함께 이루어져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모순이 실행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북한접경지역에서 느껴지는 것은 북한체제의 변화가 예정된 것이며 그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느닷없이 닥치게 될지 모른다는 급박함이다. 중국인들을 포함한 현지인들은 북한의 내부모순은 이미 오래전에 한계상황을 넘었으며 김일성의 사망으로 폭발을 제어할만한 가능한 안전장치조차 사라진 격이 됐다고 단정짓다시피하고 있다.

 북한체제의 급변과 통일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연변=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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