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 유지 식량난해결에 달려/상류층 「흡수통일」 강한불안감·허탈/대남전략 한총련장악하는데 힘 집중/“북경제 70%이상 멈춘상태”/중국갔다 귀국주늦자 사살영… 탈출/남신문 등 「참고통신」 비밀리에 돌려봐/기쁨조 출신과 첫결혼… 아내도 재혼▷북한핵◁
―북한핵은 존재하는가.
(강)『93년 12월까지 북한에 머물렀기 때문에 분명하게 말할수 있다. 북한핵은 남한이나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핵카드가 아니다. 북한 지도부는 김정일체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핵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이미 최소 5개의 핵폭탄(강씨는「핵폭탄」과「핵탄두」라는 용어를 구별없이 사용했다)을 완성, 보유한 상태다. 94년말까지 10개를 확보할 계획이다. 핵폭탄 10개가 확보되면 공개할 것이다. 그전에 발표하면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핵을 개발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94년만 무사히 보내면 모두 20개의 핵폭탄을 보유할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강)『강성산총리를 장인으로 둔 덕분에 고위층 인사를 만나 고급정보를 들을 기회가 많았다. 핵탄두에 대한 이야기는 93년 10월 장인 강성산총리집에서 남한의 안기부격인 국가안전보위부 영변핵관리책임자 조문백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당시 조문백은 아들 결혼식에 앞서 나에게 담배등 물자를 얻으러 왔다가 핵에 대해 말했다』
―북한은 왜 핵을 고집하는가.
(강)『북한은 현재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훨씬 더 많다.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민간공장을 살리고 군수공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방법은 핵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핵이 없으면 군수공장을 줄일수 없고 아울러 민간공장도 늘릴수 없는 입장이다. 핵폭탄 10개를 확보하면 핵보유 사실을 공개할 것이다. 그러면 군수공장을 줄이고도 미국이나 남한에 대해 「싸울테면 싸우자」식으로 배짱을 부릴수 있다. 핵보유 사실은 핵폭탄 10개를 확보할 때까지 비밀에 부칠 것이다』
―북한의 군사전략이 바뀌었다는 말이냐.
(강)『북한의 전략은 공격위주에서 방어위주로 바뀌었다. 김정일은 핵없이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핵을 보유해야 비로소 군수공장에 들어가는 돈을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돌릴수 있다는 것이다. 핵이 있어야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에서 우위를 차지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운반 수단은 개발했나.
(강)『지난해 말까지 로켓개발은 실험단계였다. 94년 개발을 완료,그 이후 대량생산을 할 계획이다』
▷김정일체제◁
―김일성사후 북한체제유지는 가능한가.
(강) 『당분간은 가능하다. 지식인등 상층부가 내심 흔들리고 있지만 당장은 총부리를 김정일에게 겨눌수 없을 것이다. TV에서 볼수있는 북한 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환호성은 김일성에 대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복종하는 것뿐이다. 나 스스로도 북한정부의 주장을 의심한 적이 없다. 지난 81년 북한에서 6·25남침설이 나돈 적이 있다.「리진우」라는 유명작가가 6·25직전 김일성과 스탈린의 남침계획 전화내용을 녹음한 자료를 토대로 남침설을 사석에서 흘렸다가 총살당한 사실이 있다. 지식인은 언제 어디서 화를 당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맹목적 추종이 김정일체제에서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 『김정일이 정치후계자수업을 받은것이 벌써 20년이다. 85년부터는 사실상 김일성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모든것을 김정일이 통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적 지도체제란 북한의 모든 사소한것까지 김정일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것을 의미한다. 혁명1세대도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현 상황에서 김정일체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것이다. 북한의 기본 핵심조직도 김정일의 측근세력이라 할수있는 김일성대학과 만경학원출신들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치 못하면 김정일체제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 90년부터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을 직접 보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위궤양에 걸려 위벽이 얇아져 수술을 받다 숨진다. 내부의 이러한 경제난과 국외의 압력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김정일체제의 유지를 결정할것이다. 경제난을 해결하지못하면 결국 북한 인민들의 봉기로 김정일체제는 붕괴할것이다』
―김정일체제가 붕괴된다면 그 시기는.
(강) 『시기는 못박을수 없어도 붕괴는 반드시 온다. 붕괴의 조짐은 하층민에서가 아니라 지식인·학자·간부등 상층부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김정일은 상류층에 이틀 간격으로 식량을 공급해주는등 대우를 잘해준다. 그러나 식량난이 가중되면 언제 공급이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상류층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조차도 통일되면 처형당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는것을 보며 이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특히 김일성사후 북한의 상류층은 불안을 넘어선 허탈상태에 빠져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은 오래갈수 없다』
―조씨는 남산종합학교 출신으로 김정일의 직계 후배인데 김정일은 어떤 사람이며 그 평가는.
(조) 『김정일과 함께 공부한 적이 없다. 김평일, 김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나는 어떤 풍파도 겪지 않은 상류층 사람이다. 다만 학자로서 체제를 비교할 기회는 많았다. 김정일체제의 경직성과 경제정책 실패를 잘알고있다』
(강) 『김정일은 성격이 매우 급하다. 측근들을 질책할때는 심한 욕설을 퍼붓는다. 팩팩거리기도 한다. 저돌적이기도 하다. 그는 미소를 거의 짓지 않고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측근들에 미소를 짓는 것이 최대의 만족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눈물도 매우 헤프다. 별장에서 술을 마시다 죽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동생 경희가 울자 막 야단을 치다가 조금후 자신이 눈물을 흘리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예술에 대해서는 매우 조예가 깊어 피아노는 전문가수준을 넘으며 별장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김정일에 대해 나의 동년배의 절대다수가 불신하고 있다』
―김정일의 건강과 사생활은.
(강) 『83년 4월 할아버지(강양욱) 조문차 나의 집에 들른 김정일의 모습은 건강했다. 그후 92년 11월 주석궁 경리부에 왔을때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건강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김정일의 무절제한 생활은 7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통일전선사업부 부부장인 리동우가 문수초대소에 여자를 데려 놓은 뒤 김정일을 초청했는데 이때부터 생활이 문란해졌다』
―김정일의 처는 누구인가.
(강) 『김정일의 본처는 김영숙으로 딸을 둘 두고 있으며 최근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만수대무용수 고영희와의 사이에도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출신인 성혜림과 같이 지내기도 했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교제할 때 이미 아들을 둔 유부녀의 몸이었는데 김정일이 본남편을 이혼시키고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로 보내버렸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몇년 지내다가 소련으로 나가게 했으며 이들사이에 난 아들이 김정남(23)인데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
▷대남전략◁
―한총련과 주사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 『79년부터 3년간 사로청 외사과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한총련이 주사파와 연관돼 있다는 말을 듣고 심각함을 느꼈다. 얼마전 서강대 박홍총장이 주사파에 대한 말을 하다 혼쭐난 적이 있는데 사실 이는 약과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흥분하기 쉬운 대학생들에게 집중돼 있다. 젊은이들의 열정에 주체사상이 가장 잘 먹혀들 수 있기때문에 노동자나 농민에게 침투하거나 간첩을 보내는 것보다는 한총련을 장악하는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북한의 실정은 정반대다. 왜 인간의 천국이라는 북한의 상류층 사회에서 생활하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는가를 학생들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을 어디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는가.
(강) 『한총련과 연락을 담당한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 산하에 있지만 사실은 대남사업부서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직접지도하고 있다. 북한의 사회민주당, 청교도, 기독교, 불교단체들도 모두 대남사업본부에서 총괄하고 있다』<5면에 계속>
▷권력내부◁
<4면서 계속> -북한군의 권력다툼은.
(강) 『북한군부는 크게 당작전부장 오극열파,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파, 군총정치국부국장 이봉원파로 나뉘어져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1군단파, 2군단파등으로 출신군단별로 파벌이 형성돼 있다. 특히 오진우와 오극열의 대립이 심각하다. 좋은 예가 있다. 87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기쁨조를 대동한 만찬에서 대취, 차를 몰고 가다 가로수를 들이받아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김정일과의 만찬에는 아무리 고위층이라도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지 못한다. 오진우는 교통경찰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사고로 오진우가 러시아를 오가며 치료를 받는 바람에 인민무력부장자리가 비었다. 그래서 당시 총참모였던 오극열이 인민무력부장직을 대행했다. 오극열은 즉시 핵심참모등 요직을 자신의 사람들로 바꿔치웠다. 실질적으로 군 1인자로 행세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제 오진우는 갔다. 내가 인민무력부장이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오극열의 예상과는 달리 오진우가 1년만에 완쾌해 돌아왔다. 오진우는 김일성과 빨치산을 함께한 혁명 1세대이다. 자기 사람이 몽땅 바뀐 것을 알고 격분한 오진우는 김정일에게 달려가 항의했으나 잘 먹히지 않자 김일성에게 가 읍소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인민무력부장은 오진우가 계속 차지했지만 그 이후 군의 양대산맥인 오진우와 오극열의 사이는 더욱 악화됐 고 양 파벌의 다툼도 세졌다』
―경제부문은 어떤가.
(강) 『마찬가지다. 경제의 양대세력인 강성산총리와 김달현전부총리의 사이가 좋지않다』
―강성산총리가 한때 함경북도로 좌천된 적이 있는데.
(강) 『장인 강성산총리는 김일성이 키운 인물이다. 92년 함북으로 내려간 것은 좌천된 것이 아니라 당뇨병 치료차 요양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이 벌어졌다. 장인의 자리가 비자 부총리인 김달현이 경제총책을 맡게 됐다. 그는 군수공장에 가는 전기의 30%를 줄이고 이를 탄광등 민간공장으로 돌렸다. 덕분에 민간공장이 잘 돌아갔지만 군수공장이 문을 닫았다. 이 사실이 김일성귀에 들어갔다. 김일성은 「지금 남조선과 미국이 우리 목을 죄고 있는데 군수공장을 닫아버리다니 당신 뭐하는 거야」면서 노발대발했다. 이 일로 김달현은 좌천됐다. 북한은 아무리 고위층이라도 김일성으로부터 질책을 받으면 사상감시가 시작되는 사회다. 모든 고위인사의 집과 사무실에 도청장치가 돼있다가 이 순간부터 작동되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어떠한가.
(강)『현재 북한의 민간경제는 70%이상이 멈춘 상태이다. 북한의 유일한 청진화학섬유공장이 이미 3년동안 멈춘 상태여서 군수품을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 8천여명도 도로, 건설공사에 동원돼 공장에는 사람이 없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북한의 가장 중요한 공장인 김책제철소가 전기와 중유가 부족해 한달간 가동을 전면 중단한 적도 있다. 북한 강철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김책제철소의 용광로 3개중 2개는 이미 수년전에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며 한 용광로로 연간 60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북한의 농촌생활은 어떠한가.
(강)『남한의 팀스피리트훈련은 북한에서 공격훈련으로 생각하고 있다. 팀스피리트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의 모든 인력이 군사훈련에 동원되기 때문에 경제에도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농촌도 노약자와 부녀자가 주종인데 젊은이들이 모두 훈련에 참가해 몇주동안 농사지을 일손이 부족해 식량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특히 문제는 석유문제이다. 농기계에 투입되어야할 기름이 모두 군사시설에 돌려져 농기계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실정이 된다. 북한은 이런 문제때문에 더욱 핵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핵문제로 인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발언이 나온 이후에는 중국에 파견된 정보요원들을 통해 미국이 정말 북한을 공격할 것인지, 중국의 석유공급가능량을 알아오게 지시했다』
▷귀순동기◁
―강씨의 귀순동기는.
『89년 군부의 권력다툼등으로 평남 북창군의 18호관리소에 수용돼 2년동안 수용생활을 했다. 탄광에서 일하면서 굶어죽을 정도로 고생하는 3만여명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했다. 고위층친척들이 김정일에게 부탁해 1년여만에 간신히 풀려날수 있었다. 풀려났다는 기쁨보다는 김정일체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실감했다. 그전에 일하던 보위대학에 복귀해야 하는데 여의치않아 중국과 무역을 하는 금수산의사당(주석궁) 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가게 됐다. 부사장직은 중국으로부터 거래대금을 받아오는 직책이다. 93년12월 대금을 받으러 1주체류 예정으로 중국에 갔다가 체류가 4주로 늘어나 같이 간 직원을 돌려보냈더니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이 김정일에게 「강명도가 행방불명됐다」고 보고했다. 김정일은 「강명도를 체포하거나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을 결심했다』
―장인 강성산총리와 처에게 귀순결심을 사전에 알렸는가.
『전혀 알리지 않았다. 남한귀순은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김일성장례식때 강성산총리는 건재한 모습을 보였는데.
『김정일이 정권안정을 위해 강총리를 제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이 끝나면 심각한 조처가 내려질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5월귀순까지의 행적은.
『중국의 장춘, 심양, 북경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조씨의 귀순동기는.
『나는 고위층의 자제로 태어나 지금까지 아무 어려움없이 순탄히 살아왔다. 그러나 학자로서 양쪽체제에 대한 비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북조선의 암울한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더구나 김일성의 사망후 김정일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귀순을 결심케 한 결정적 동기가 됐다』
▷기타◁
―강씨는 결혼을 언제 했나.
(강) 『결혼을 두번 했다. 김정일 기쁨조 출신 여자와 결혼한 적이 있다. 그러나 90년 1월 좌천돼 평남으로 쫓겨났을때 여자가 불평하자 우리 부모가 쫓아냈다. 그뒤 보위대학에 다니던 여동생이 현재의 처인 강희영을 소개했다. 지금 처도 재혼이다. 아이를 못낳아 결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아버지 강성산총리가 잠시 함북으로 내려갔을때 남자집에서 이혼시킨 것이다』
―김일성사망 이후 북한의 권력승계가 지연되는 이유는.
(강) 『내부의 권력다툼 때문은 아니다. 이미 김정일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암투가 따로 벌어질 틈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오진우가 혁명 1세대 군인이고 연장자이므로 주석으로 앉히고 김정일이 총애하는 오극열을 무력부장으로 승진시킬 것같다. 권력승계가 지연되는 것은 오진우가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같다. 아마도 김정일이 당비서와 군최고통수자의 위치에 있고 주석직만 오진우나 이종옥으로 올릴 것같다』
―북한에서는 남한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접하나.
(조)『내가 다닌 남산학교같은 곳에서 남한 신문을 볼 수 있다. 또 남한에 대한 각종 자료가 「참고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부장(장관급)들에게 배포된다. 이 통신은 보는 즉시 반환해야 하나 비밀리에 일부 주민들이 돌려보고 있어 어렵지 않게 남한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원일희·권혁범·염영남기자>원일희·권혁범·염영남기자>
□신원사항
●강명도
○출생지: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 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강명도(36세, 58·12·4생)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 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 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대외명칭「릉라 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조명철(35세,59.4.2생)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 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 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 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 관리학부 연수
*경영학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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