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종전입장 차이없어/“후계확고”도 북의 선전용 분석 정부는 24일 평양을 방문했던 박보희 세계일보사장이 북경에서 전한 「김정일 면담내용」에 대해 별다른 의미나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관계자들은 우선 박씨가 밝힌 면담내용에 그다지 신뢰성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그가 전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남북정상회담등과 관련한 북한의 종래입장과 다를게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김일성사망후 남북정상회담의 취소가 아닌 연기를 공식통보해 온 것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바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정부는 판단해 왔다』며 『따라서 박씨가「김정일당비서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한 얘기는 북한의 종전 입장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박씨가 김정일이 우리정부와 미국정부에 전하는 구두메시지를 갖고 왔다고 밝힌데 대해서도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김정일이 박씨에게 정말로 구두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는지,아니면 박씨가 김정일과의 면담때 들은 얘기를 모두 구두메시지로 포장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박씨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미국으로 가 곧 들어올 것같지도 않다』며 박씨가 정부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한 후 사법처리등을 의식,방북결과를 일단 부풀리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정부는 박씨가 북한의 메신저라기보다 선전에 이용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오히려 경계하고 있다.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잘 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이나 『아버지가 미국에 가 볼 생각을 갖고 있다가 못하게 됐으니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 클린턴미대통령과의 회담을 희망하고 있음을 피력한 것등이 모두 북한 후계체제에 이상이 없음을 알리는 대외선전용이라는 분석이다.
또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 클린턴대통령에게 극구 감사의 뜻을 표한 이면에는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한미간을 이간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기도 하다.
박씨가 전한 면담상황 자체에도 믿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정부 관계자도 있다. 한 관계자는 『박씨가 「추도식직후인 20일 하오 김정일을 만나 손을 잡아 보니 후끈했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힘이 있는등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다」고 했는데 추도식에 나타난 김의 모습은 시종 입을 반쯤 벌리고 있을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었음을 볼 때 박씨의 말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영삼대통령이 23일 한일정상회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그 시기를 일방적으로 명백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밝힌 것도 정부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합의는 유효하며 상황과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쌍방이 다시 구체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밝힌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새 체제를 상대로 한 남북정상회담등 대북정책은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표명과 상황변화를 보아 가며 세워간다는 입장이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박보희씨의 방북관련 발언록/서양서는 「김정일원수각하」호칭/방북은 원수집아닌 형제집 간것/북동포와 아픔함께… 통일 물꼬
김일성 장례기간중 평양을 방문하고 지난 23일 귀로에 북경에 들른 박보희세계일보 사장은 3차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조문 및 방북경위등에 관해 「풍성한 말」을 남겼다.
▲김정일과 남북한 호칭
박사장은 평양체류 기간중 김정일을 「김정일 비서님」이라고 호칭했다고 말했으나 회견에 앞서 배포한 성명서 내용에는 영어로「원수각하」(HIS EXCELLENCY MARSHALL)라고 호칭했다.그는 기자들이 영문호칭에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서양에서는 김정일을 그렇게 호칭한다』고 답변했다.그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사석에서는 김정일비서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박사장은 또 성명서에서 북한을「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약자인 DPRK로 표기했으나 한국에대해서는 SOUTH KOREA라고 표기했다.
▲방북 및 조문경위
그는 성명서에서 자신이 방북하게된 경위와 관련,『김일성조문은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이라는 신념에서 』『역사에는 전쟁중이라도 적장이 쓰러지면 조의를 표했던 예가 있다』『정치와 이념과 과거의 원한관계를 초월하여 김일성주석의 영전에 조의를 표하기로 결심했다』는등의 설명을 했다.
그는 또 『문선명총재의 참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신념에서 방북했다』며 『문선명총재의 양위분께서 1991년 12월 평양을 방문,김일성주석과 과거의 원한을 푸시고「형제지의」를 맺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것은 원수의 집에 간 것이 아니라 형제의 집에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조국통일의 물꼬를 튼다는 굳은 신념에서 방북을 했다』면서 자신이 6·25당시 사관학교 생도로서 전쟁 발발 첫날부터 총알받이가 되어 싸웠다고 주장하고 남북이 『상호간의 원한의 담을 헐지않으면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박사장은 또 『김일성주석의 장의기간중에 애도하고 통곡하는 2천5백만 북한동포들과 그 아픔을 나누는 대승적 동포애를 통해 조국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신념에서 행동했다』고 말하기도했다.<북경=유동희특파원>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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