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사망이후 숨가쁘게 진행되어온 북의 권력세습작업은 일단 그 한 막을 내렸다. 후계자의 위치를 굳힌 듯이 여겨지는 김정일은 이제 체제 재정비와 세계를 상대로 한 핵게임의 지속이라는 과제를 떠 안게 되었다. 김의 사망은 북측에 뿐만 아니라 남측에도 적지 않은 충격과 파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우리는 소모적 사상논쟁과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정부의 명확한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논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던 듯하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 즉 우리가 북의 체제변화와 정상회담의 성사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남과 북의 통일에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북의 체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 북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북한핵과 통일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 자신이 흔들림없이 중심이 잡혀 있을 때 북의 체제가 어떻게 변하든 상황의 전개가 어떻게 되든 우리의 대응이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며, 상황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최소화되고 그 결과 또한 희망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당면문제는 북한의 핵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한반도가 김일성의 죽음으로 온통 들끓고 있을 때 미국을 여행하면서 주요 부처의 많은 핵심인사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들과 북한의 장래와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자는 미국의 대북한정책과 핵문제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미국인들이 김일성의 죽음과 김정일의 세습에 대하여 갖는 관심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기인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그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세계의 마지막 공산독재자가 사라졌다는데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 사이에 계속되어온 핵협상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NPT체제의 연장을 위해 북한 핵문제를 올해 안에 종결시켜야만 한다. 따라서 모든 분석과 예측은 이를 근본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북한의 지도자가 누가 되든 그들이 북핵해결을 위해 갖고 있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이 김정일체제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세간의 의혹스러운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북과의 핵협상에 대하여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미국인 관리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한정책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절대원칙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첫째 미국과 한국은 수십년동안 이어온 동맹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절대적(IMPERATIVE)이며 불변적(UNCHANGEABLE)인 것이라는 점이었다. 미국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한국을 결코 소외시키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결정을 한국과의 협의하에 행할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누누이 강조했다. 북한핵에 대처하는데 있어 한미간에 이견을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전술상의 차이일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기본전략에서 한미는 정확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북한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핵을 가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의 핵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사찰을 실시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요즈음 일각에서 의혹의 눈길로 제기하고 있는 현상황의 인정이라는 정책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북한핵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제거」가 미국의 목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미국은 북한의 핵재처리과정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목표로 하고 있고, 북한이 어떠한 형태로든 핵무기개발 가능성을 갖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또 미국은 요즈음 흔히 말해지고 있는 것과 달리 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으며, 북한의 핵문제가 한반도뿐만이 아닌 세계의 안정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는 인식하에 철저한 정책수립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이와 같은 세 가지 절대 부가변원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미국과의 1, 2차 회담을 통하여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남북한 군사력을 감축하며,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은 3차 회담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1, 2차 회담에서 북측의 이러한 주장을 일축했던 것처럼 3차 회담에서도 결코 이와 같은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북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좀더 성의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만이 7천만 민족의 소망인 남북통일의 첩경임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