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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소·중 설득(러 외교문서로 본 6·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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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소·중 설득(러 외교문서로 본 6·25:2)

입력
199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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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승인서」제시 모결심 간청/“남조선 해방”에 소서 「반쪽허가」/모 “미참전땐 지원” 사실상 재가 6·25는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승낙을 얻고 협조약속을 받고 일으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일성은 어떻게 그들의 승낙을 얻어냈으며 협조약속을 받아내기까지 무슨「공작」을 폈는가. 물론 스탈린이 당시 미국에 대응하는「세계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 장악을 기도했고 이를 위해 김일성을 부추겨 남침을 사주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6·25관련 외교문서는 일단 김일성의「설득」부분만을 증거해 주고 있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남침 재가를 얻어내기 위해 4단계 설득과정을 거쳤다. 우선 주평양소련대사인 슈티코프를 설득했다. 다음 슈티코프를 통해 스탈린과의 대좌를 성공시키고 그 자리에서『결행하되 중국과 상의하라』는「반허가」를 얻었다. 김일성은 중국으로 달려가 모택동으로부터『미국이 참전하면 돕겠다』는 나머지「반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46∼47년 동안 한국에서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측 대표를 맡은바 있는 슈티코프대사는 당시의 김일성북한주석과 박헌영외무장관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49년 1월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수차례에 걸쳐 『남한의 군인과 경찰이 38선을 넘어 침입해 왔다』고 설명하며『하루속히 조소우호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호조약의 체결은 북한이 교전상태에 들어가면 소련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소련의「미국눈치보기」로 좌절됐다.

 이후 김일성은 38선에서의 남북초소간 소규모 교전상황을 듣고 슈티코프를 찾았다. 김일성은『북한군은 소총 탄약이 3∼10발 밖에 없어 항상 퇴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티코프는 본국으로 무기지원을 요청했고(49년2월3일) 소련은 즉각 이에 응했다. 김일성은 이를 계기로 소련에 본격적인 무기판매와 차관공여를 요구하면서 스탈린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달후인 3월5일이었다. 박헌영도 배석했다. 김일성은「인민경제개발 2개년계획」의 지원으로 얘기를 시작한뒤 스탈린이 흔쾌히 나오자 본격적인「전쟁얘기」를 꺼냈다. 김일성이『남반부에서 대북음모를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안경비대가 없다』고 하자 박헌영이 가세해 무기원조를 요청했다. 1시간50분 정도 걸린 회담의 말미에서는 스탈린이『북한은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충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년동안 소련의 북한에대한 군사지원이 이어졌다. 50년1월19일 김일성은 남침의 필요성을 슈티코프를 통해 모스크바에 전달했다. 김일성은『중국해방이 이뤄졌으니(49년10월) 남조선 차례다. 모택동은 남쪽이 진격해오면 반격하는 형식을 취하는게 좋겠다고 하는데 이승만은 공격해 오지않을 것이다. 남조선해방이 늦어지면 남한 인민들이 실망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자필전문을 보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면담을 허락했고 양자회담은 50년4월에 이뤄졌다. 이날의 2차회담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스탈린은『북한의 통일과업 개시에 동의하며 최종결정은 중국과 북한에 의해 공동으로 이뤄져야 하고 중국이 부정적이면 결정을 연기한다』는「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김일성은 즉각 중국설득에 들어갔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50년5월13일 북경을 방문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승인서」를 내보이며 모택동의 결심을 간청했다. 모택동은 스탈린과 상의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남조선해방3단계전략을 모택동에게 털어놨다. 군사력 군비 증강, 대남평화통일 제의, 남측이 제의를 거부하면 전투행위를 개시한다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같은 3단계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또 중국의「우려」를 감안한듯『일본군의 참전가능성은 없지만 참전하면 우리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그러나『만일 미국이 참전하면 곤란하다』고 움츠렸다. 모택동은『미국이 참전하면 우리가 돕겠다』고 사실상의 재가를 내려주었다. 이날 저녁 김일성은 공식만찬에서『회담 기간중 모든 문제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해 자신의 요구가 관철됐음을 선언했다.<정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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