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지금껏 참으로 흥청망청하며 겁없이 살아온줄을 새삼 자각하는 때다. 그동안 꼭지만 틀면 더운물 찬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다, 스위치만 돌리면 더운 바람 찬 바람마저 절로 나왔으니 누구나 겨울 여름이 어디 따로 있으랴 하며 마음 편히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북태평양고기압의 이상발달에 따른 장마 조기실종과 함께 20일째 계속되는 40도에 육박하는 유례없는 불볕더위의 기승이 결코 예사롭지가 않게만 느껴진다. 마치 아낄줄 모르고 흥청망청했다간 반드시 눈물 흘릴 때가 있다했던 옛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의 꾸지람이 오늘에 되살아난 것같은 죄책감마저 일고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증막 더위속에 서울도심에서마저 느닷없는 정전사태에다 물부족사태마저 빚어지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가로등 절전으로 서울밤거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휘황했던 도심의 네온사인도 조만간 규제될 것이라니 이런 난리가 또 달리 없겠다.
23일부터 전국이 비상체제로 돌입키로 했다니 불볕더위속의 가뭄 및 에너지비상의 실상이 더욱 피부에 닿게 되었다. 공공청사 승강기 가동중단과 냉방기 가동 및 전등 사용제한이 뒤따를 것이란 예보인 것이다.
결국 흥청망청 끝에 전력예비율 2% 이하의 불벼락이 우리 모두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하겠다.
도시의 이같은 비상사태도 그 심각함이 농촌과 비할 바가 못됨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전국의 논밭에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양수기용 호스 설치의 안타까움도 가뭄이 계속되면서 수원자체가 바닥나는 절망으로까지 차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우량 절대부족과 이런 사태를 예상못한 대책부재는 수질악화마저 부채질, 지역에 따라 벌써부터 식수파동을 낳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제한급수가 시작됐는가 하면 하천수의 바다유입 부족이 연안양식어업마저 결딴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때를 맞아 절감되는 게 우리 국가나 사회의 단계별 비상대책 부재다. 범세계적으로 가뭄소동이 오래 전부터 빚어져 왔는데도 아무 경고나 대비없이 오다 이제와서 한전직원들이나 동원해 대형건물의 냉방온도나 살피는게 고작이다.
목타는 농촌에 양수기를 이제라도 보내주려고 하니 양수기 자체도 모자라는데다 저수지가 바닥나고 비상시에 대비한다했던 전국의 수많은 관정마저 그동안의 관리소홀로 쓸모가 없어졌음이 드러나고 있다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와서 이탓 저탓을 할 겨를이 없다. 정부가 인력·장비·예산을 총동원함은 물론이고 한방울의 물과 한등의 전력을 아끼는 국민적 자각과 동참이 날이 갈수록 절실하다.
사실 김일성사망에 따른 어수선한 남북관계에다 거듭된 노사분규도 모자라 자연재해마저 발호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겹위기」라 할만하다. 당국의 내실있는 총력체제 구축과 국민적 동참을 거듭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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