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퇴장따라 개방·개혁요구 거세질듯/경제지원 지렛대 핵해결도 적극자세 전망 「김정일의 북한」에 대해서 중국은 일방통행식에 가까웠던 과거의 경제협력 방식과는 다른 「협력과 압력」이라는 양면의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대중관계에 있어 「경제적 압력」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구소련의 붕괴, 핵문제의 악화등 경제외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최근 몇년간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급격히 심화됐다.
또한 김일성의 퇴장으로 북한은 중국의 경제압력에 대해 「김일성브레이크」라는 효과적 견제수단을 잃어버렸다.
93년도 북한의 대외교역 규모는 26억4천만 달러이며 이중 수출은 10억2천만달러, 수입은 16억2천만 달러였다. 이중 대중의존도는 30∼37%선. 소련의 붕괴로 북한의 대중경제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진 탓이다. 특히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주요 품목이 식량과 원유등이어서 질적 측면에서 수치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북한의 총 대외채무 1백3억2천만달러중 45억달러가 중국에 대한 빚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북한은 중국에 거꾸로 큰 소리를 쳐왔다. 김일성 사망전인 이달초 중국을 방문했던 북한의 이성대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중국의 오의대외경제무역합작부장을 만난뒤 중국의 제9차 5개년 계획기간(1996∼2000)에도 북한에 차관을 계속 제공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지난해 10월6일에는 기존의 양국 무역·경제협력관계 협정를 대체하는 「경제무역협조 의정서」가 조인됐다. 이때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과거의 「우호관계」에서 「경제관계」로 전환시키려던 중국의 노력은 북한의 반발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93년부터 원유공급가격을 우호가격에서 국제가격으로 바꾸고 결제도 국제경화로 한다고 북한에 통보했지만 북한과 중국과의 93년도 교역량은 92년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이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원유대금지급을 유예해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국제가격과 경화결제방식으로 바꾼 이후 북한의 원유도입량이 크게 줄어들었던 구소련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중국의 개방성과를 제시하며 북한의 본격적인 경제개혁과 개방을 촉구해왔다.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요구와도 맞물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부담을 한국 미국 일본에 떠넘기려고 북한에 개방을 촉구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개방과 개혁노력은 미미하다. 김일성치하에서의 북한의 개혁노력은 어디까지나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핵을 볼모로 한 북한에 대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을 해온 중국의 대북영향력은 김일성사망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카리스마적 존재인 김일성이 없어진 취약한 북한을 어떻게 요리할지를 잘 알고 있다. 김일성은 극심한 경제의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개혁·개방압력에는 잘 대응해왔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후계자 김정일에게는 경제지원을 지렛대로 삼아 핵문제등 현안해결을 위해 보다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문제 해결이후에도 중국은 북한의 실질적인 경제개혁과 개방을 촉구할 수 있는 확고한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북경=유동희특파원>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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