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순·코스예고없이 철저통제/장례장면 검열거쳐 하오3시 첫 송출/관심대상 장지도 마지막까지 비공개 사망 11일만인 19일상오부터 진행된 김일성의 장례식은 시종 베일에 가려진채 진행돼 외부세계의 의혹을 불렀다.
김일성사망직후 해외조문객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한 북한당국은 이날 장례식장면도 동시생중계를 하지 않고 사전에 검열과 편집을 거친 녹화화면을 3∼4시간뒤 공개했다.
가장 관심의 초점이었던 장지조차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었던 실정이었으며 평양시내를 거의 다 거쳤던 운구행렬의 진행코스도 시내를 순환하는 경로가 아니라 다음 도착지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의 관영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상오7시부터 「영결식」을 위한 합동방송체제에 들어갔다. 통일원등 관계당국, 내외통신등의 관계자들은 생중계를 예상하고 대기체제에 들어갔으나 5시간여동안 조곡과 일반 애도방송만이 계속됐다. 낮12시 북한 아나운서는 청취하기 힘들정도로 울음섞인 목소리로 금수산의사당에서 영결식 보도를 시작했으나 이는 녹음방송으로 장례식이 시작된 시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북한TV들도 역시 낮12시께 까지는 장례식장면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다만 관례대로 미리 제작해놓은 해외홍보용 화면을 인공위성을 통해 낮12시부터 하오3시까지등 몇차례에 걸쳐 영국 WTN과 일본 풀(일본의 6개민방)로 송출했다. 국내 및 해외 방송사들은 각 제휴사들과의 양해에 따라 인공위성으로 이 화면을 동시에 받아 수신했다.
첫 방송인 낮12∼하오3시 방송에서는 장례식과 관련된 장면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 화면들은 모두 전날 혹은 그 이전에 녹화·편집한 장면들이었다. 처음 1시간 가량은 평양 만수대 광장등의 군중이 운집한 장면이었고 그 다음 1시간은 전국 각 지역에 마련된 빈소나 주민들 표정이었다. 이 장면들은 화면 외에는 온통 울부짖는 소리뿐이었고 일체의 아나운스먼트가 없었다. 마지막 1시간 가량은 금수산의사당의 김일성빈소에서 군인과 일반조문객들이 조문하는 모습을 조곡과 간간이 들리는 아나운스먼트를 배경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해외 송출 화면에 장례식과 장례행렬장면이 처음 나온것은 하오3시10분께. 이 화면은 통상 북한 현지 방송보다 2∼3시간 뒤에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장례식행사 관련 장면을 낮12시∼하오1시께부터 중앙TV등을 통해 내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관계자들은 북한의 이례적인 보도태도가 불상사를 대비한 경호상의 목적 편집과 조작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것등 두가지 요인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날 보도태도에서는 장례식중 발생할 지도 모를 소요사태를 극도로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는게 관계기관의 다수설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측으로서 원하지 않는 장면은 방송에서 삭제하고 사체훼손등의 기도를 사전에 봉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례식의 식순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결국 발표되지 않았다. 북한방송은 『평양 시내 연도에는 2백만명의 주민들이 운집, 오열을 터뜨렸다』고 보도했으나 이 수많은 군중들은 모두 당세포조직등을 통해 철저한 통제하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중매체를 통한 식순예고는 없으므로 대부분 전체 장례식의 진행상황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는게 당국의 분석이다.
영결식이 시작된 금수산의사당에서 김정일은 오진우인민무력부장, 강성산총리등 장의위원 전원을 대동하고 모습을 드러내 장례식연기이후 권력승계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관측을 무색케 했다.<유승우·홍윤오기자>유승우·홍윤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