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죽음을 지켜보며 선현의 예지에 새삼 감탄한다. 논어 태백편에 이런 말이 있다. <새는 죽음에 이르러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 그 말이 선하다> (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 김일성은 민족의 행복에 흉해를 끼쳐오던 장본인이다. 그런 김일성이 하루아침에 천성을 홱 바꾼듯 남북정상회담을 갖자고 하고 70세이상 고령자의 고향방문을 제의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이미 김일성은 가쁜 모닥숨을 몰아쉬고 있었음이 분명하리라. 『조금이라도 빨리 김일성이 그 선근을 움틔웠더라면 남북귀일을 향한 일보를 내딛고 1천만 이산가족의 통한을 다소 위무시켰을 텐데…』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을 그래서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다. 새는 죽음에 이르러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 그 말이 선하다>
김일성의 죄악은 사후 더 보태지고 있다. 김정일은 아비의 죽음이 「임금의 붕어」쯤으로 믿도록 백성을 다그쳐 몰아붙이고 있다. 무덤도 그 격에 맞춰 능의 규모로 꾸며지고 있다. 이런 강요된 충성심, 초호화판 무덤은 얼마나 견뎌날 수 있을 것인가.
삼국지에서 비근한 해답을 찾아보자. 위나라 조조의 무덤은 여태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다만 「칠십이의총」의 전설만 전해질 뿐이다. 간웅 조조는 그래도 백성 무서운 줄은 알아 「천고은신계」라는 기상천외의 장례 각본을 스스로 짜 훼묘나 도굴을 영원히 막게 했단다. 72개의 관을 미리 짠후 장하변에 72개의 봉분을 만들어 두고 숨진후 동시다발로 장사를 치르게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로써 조조의 시신은 1천8백년 세월동안 온전히 지켜지기는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무덤을 찾아 제대로 보전하려 해도 불가능한 지경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조조는 결국 제꾀에 제가 넘어 간 것이라고 비아냥 거린다.
오나라 손권의 무덤은 남경 자금산의 명태조 주원장의 효능발치에 한 움큼의 봉분이나 한개의 비석도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능이 아닌 묘라 불리는 무덤에는 단지 「강소성 문물보호단위」표지가 쓸쓸히 지키고 있다.
촉나라 유비의 무덤 혜능은 그나마 성도시 무후사 한켠에 제모습대로 전해온다. 무후사는 그의 승상이던 제갈공명을 위한 사당. 3만7천에 이르는 부지중 겨우 2천가 유비의 유택으로 할애돼 있다.
삼국지 세 영웅들은 무덤만이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게 아니다. 도대체 중국 어디를 가도 공공의 장소에는 이들을 기리는 동상, 기념물 따위가 세워진 곳이 없다. 제갈공명과 관우를 위한 사당은 수천개가 도처에 있어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촉의 장비·황충·조자룡, 오의 주유, 위의 장료, 심지어 조조의 동향인으로 그의 손에 죽은 신의 화타의 동상까지 공원·유원지 또는 시가지 로터리에 우뚝 서 뭇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도…. 그런데 옳은 일이 아니고서는 언젠가 차갑게 등을 돌리는 민심의 향배를 김정일은 과연 알까 모를까.<통일부장>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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