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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소동·「조문」파문의 해답/박승평 논설위원(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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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소동·「조문」파문의 해답/박승평 논설위원(일요시론)

입력
199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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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불볕더위에 콘크리트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 북한동포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부끄럽고 측은하다 못해 누구나 가슴이 찢어진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때아닌 「인산」 소동이란 말인가. 조선왕조시대 어질고 못난 우리 백성들은 왕이 승하했을 때의 국상인 인산때 바로 저런 모습으로 나랏님의 가심을 애통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짐이 국가』라는 그런 왕조시대가 아니라 포도에 꿇어 있는 국민이 바로 주권자인 민주시대이다. 그런데 말로는 「민주인공」이라면서 「상왕」 김일성의 죽음과 「세습왕」 김정일의 등극앞에 「인산」과「충성」을 강요하다 못해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자랑삼고 있는 북한이 아닌가.

 지금은 세계가 한 울타리인 21세기 문턱의 고도정보화시대이다. 또 공산주의 몰락으로 이념투쟁의 역사가 끝장났음이 선언되기에 이른 때이다. 그런 시대적 변화나 역사전개도 모른채 국민들을 청맹과니로만 살게 강요하는 그들의 「왕조」노릇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를 진정 슬프게 하는것은 그런 것뿐만이 아니다. 유례없는 붉은 왕조의 여전한 얕은 책략에 덩달은 해프닝이 나라안팎에서 빚어지고 있는 안타깝고 못내 답답한 일부 현실이다.

 우리의 혈맹국의 대통령마저 현실적 이해추구에 성급한 나머지 전범과 독재노릇에 대한 평가는 접어둔채 오히려 영도력을 조문했다 구설수에 말리는가 하면, 주변국들마저 김정일의 세습현실을 손쉽게 인정하는 쪽으로만 줄달음치다 뒤늦게 조문행위 중지를 명령하는 등 어쩐지 혼란스런 모습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조차 한반도·한민족의 문제에 대한 시대적 주인의식을 진정으로 발휘하고 있고, 김일성사망으로 춤추기 시작한 주변정세에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고 싶어진다.

 사실 김의 사망이란 우리뿐 아니라 온 세계가 기다려온 통일과 한반도 주변정세호전의 역사적 계기인데, 이런 시점에서 우리민족의 기상과 주인의식을 드러내 정세를 은연중 주도할 의연한 자세와 대응에 소홀한 감도 없지 않았다. 무산된 첫 남북정상회담에의 현실적 미련에 끌려 『아쉽다』는 소리만 앞세운채 김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김정일세습및 북핵문제등에 대한 원칙표명을 삼가는게 오히려 또다른 혼란을 야기한 요인으로 작용한 감이 없지 않다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6·25 남침의 피해를 직접 당한 우리가 현실적 이유로 김의 전쟁범죄에 대한 평가를 늦추고 있는 사이 우방의 엉뚱한 애도조문이 성급히 나왔는가 하면 국내에서마저 야당과 재야에서 때아닌 조문파동이 생겨났던 것이 아닌가.

 이럴수록 또다시 눈앞에 떠오르는건 붉은 세습왕조의 광신적 「인산소동」에 동원되어 광란하는 북녘 우리동포들의 가여운 모습이다. 누구라도 김일성을 조문하려거든 동포들의 그런 모습부터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주권자인 인민을 저처럼 까칠하고 헐벗게 한채 광신도로 둔갑시켜 놓은게 소위 위대한 영도력의 정체란 것일까. 또 민중적 삶과 민중의 한을 그처럼 들먹여온 일부 운동권들도 그런 어이없는 민중적 모습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통일은 역사적 필연임을 오늘의 우리는 누구나 안다. 베를린장벽은 저절로 무너졌고, 예멘은 싸움끝에 통일의 길로 들어섰으며, 이제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차례만 남아 있다. 그러나 세습소동이나 핵카드등 우리의 아픈 현실은 역사적 필연의 도래를 아직은 늦추고 있다. 그래서 누구라도 쉽사리 현실에 집착하고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산에서 길을 잃으면 높은 곳으로 되올라가서 크게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앞에서 한때 냉전을 앞세워 지구의 반쪽을 호령했던 레닌·스탈린·모택동등도 한줌 흙과 허망한 기억으로 사라져 갔다. 「위대한 수령」 타령에 49년을 왕처럼 군림하며 보냈던 김일성이라고 그들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한 시대와 시절을 그처럼 짓궂게 희롱한 그런 개인적 삶이 아니다. 오히려 꺾이고 희롱당해온 우리의 역사와 고통받아온 북녘의 우리 핏줄들, 그리고 새로운 역사전개와 도약으로 보상받아야 하는 겨레의 앞날이 가장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최근들어 새삼 절실하다.

 우리 모두가 그런 역사적 눈높이와 중심을 확고히 잡아나갈 때 엉거주춤함 속에서 돌출하고 있는 한때의 혼란과 엉뚱한 조문소동 및 시시때때로 표변하는 북한의 얕은 술책쯤이야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그저 불쌍한 북한동포부터 생각하고 보면 오늘의 온갖 해답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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