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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태와 남북관계 현황/이병룡(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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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실태와 남북관계 현황/이병룡(특별기고)

입력
199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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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소식은 세계는 물론 7천만 겨레에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분단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사에 깊은 상처를 안겨 놓고 이제 김일성시대는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사망으로 지금 내외의 관심은 당정군 3권을 장악하고 새로 등장하는 김정일 체제가 냉전시대와 비교해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북한체제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또한 남북관계의 전개와 통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북한의 개방을 예측함은 물론 통일이 눈 앞에 다가 오고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는 모습을 요 며칠간 신문 TV에서 많이 보아 왔다. 지금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일자를 이틀간이나 연기하는 등 우상화를 한층 강화하면서 부자세습체제의 기반을 다져가는 한편, 15일 이후부터는 중단하였던 대남비방 방송을 재개, 대남교란을 동시에 획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이 등장하는 김정일시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큰 만큼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실체와 남북이 당면한 현실 상황이다.

 북한은 지금 외부세계의 급변으로 개방과 개혁의 압력을 받으면서 동시에 체제유지를 위한 내부단속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구조적 갈등 속에서 이제껏 주체사상을 유일의 지도이념으로 삼고 당과 수령 그리고 인민대중이 삼위일체가 된 국가체제와 남북한 분단의 특수상황을 이용한 냉전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체제를 고취시키면서 그들 체제를 관리해 왔다.

 다른 사회주의 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같은 점들은 지금 북한의 체제관리에는 강점이 되어 왔으나 동시에 그들 체제의 개혁·개방에는 역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의 저해요인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촉진요인들도 현재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국제환경, 즉 이념보다는 국제적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와 핵투명성을 요구하는 국제공조체제에 대응하는 문제, 파탄직전에 놓여 있는 주민들의 생활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 하는 문제등은 우선 눈앞에 떨어진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요인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변화를 김일성의 사망으로 당장 북한으로부터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제껏 북한은 외부의 충격이나 압력을 극도로 제한해 수용함으로써 주체형 사회주의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응해 왔기 때문에 비록 밑으로부터의 실용주의적 사고가 싹트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의 획일적 통제 하에서 주체사상을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부의 출현이 단시일 내에 조직적으로 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그들 대외정책과 표리관계에 있는 만큼 형식적으로나마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나 기본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생산적인 결과를 단기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같은 중대한 전환점에서 우리의 여론주도층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다시 한번 냉철하게 음미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우리가 이룩할 수 있는 통일의 유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독일처럼 흡수통일이 되는 것이고, 둘째로 남북이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여 협의통일을 이룩하는 길이다. 그러나 흡수통일은 북한체제가 붕괴되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일거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이와 같이 흡수통일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인 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한 협의통일은 언제쯤 될 것인가, 그저 기다리면 될 것인가, 아니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되돌아 가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통일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은 민족사의 단절을 막는 한편, 민족번영의 조건이기 때문에 7천만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고르게 누리고 살 수 있는 고도복지 사회를 통일국가의 미래상으로 설정해 놓고 우리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통일을 가능케 하는 사전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우리의 대비역량과 비례해서 그 시간도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냉철한 이성으로 되돌아 가서 우선 온 국민의 힘을 모아 국력을 더욱 신장시켜야 한다. 우리의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한, 북한은 대남전복차원의 통일전선사업을 계속할 것이며, 남북간에는 선전적 차원의 공허한 입씨름만 계속될 따름이다.

 우리의 통일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민족사를 창조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안정된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공통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준비없는 조기통일론과 근거없는 통일낙관론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민족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민족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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