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해 전만 해도 삐삐는 사업상 시간을 다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거나 윗사람이 불시에 소재파악을 할 때 사용되는 그야말로 업무상 필요에 의해 하는 수 없이 지니고 다니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아, 바쁜 사람이구나」하고 여겼지만 최근에는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도 「제일 갖고 싶은 것이 삐삐」라고 한다니 호출기가 직업과 관련된 소지품으로서 활용될 뿐만 아니라 누구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 편리한 일종의 문명의 이기로 일반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 후배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삐삐나 핸드폰을 사용치 않는데 그 이유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거니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신호가 울리면 매우 겸연쩍다』고 하며 사뭇 부정적이다.
얼마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도중 청중석에서 느닷없이 삐삐가 울려 지휘자와 연주자들을 당혹하게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얼마나 우리가 상식을 벗어난 불감증에 걸려 있는가 반성하게 되고 또 얼마나 일에 쫓기며 사는 사람들인가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십대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치라던가.
요즈음에는 젊은연인들 사이에도 삐삐를 통하여 어느 때건 연락을 할 수 있어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그것이 나름대로 편리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사용횟수가 잦으면 오히려 환청으로 인한 스트레스만 가중시키고 그들 사이를 인위적으로 좁히는 셈이 되어 무리가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증진시켜 주는 것은 애틋한 그리움일텐데 시도 때도 없이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다면 그만큼 그리움과 신비스러움이 삭감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움이란 사랑의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에 너무 감화되어서인지 신세대 연인들 사이에 번지는 삐삐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 정도로 망설임도 참을성도 없다는 한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어느덧 내가 구세대에 속하기 때문일까.<고정수 조각가>고정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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