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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없는 북한/유세희 한양대교수·중소연구소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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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없는 북한/유세희 한양대교수·중소연구소장(특별기고)

입력
1994.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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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국현대사의 파란만장했던 한 장이 끝났다. 새로운 장에 들어서는 전환기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소 불안한 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김일성의 사망이 북한에서의 변화의 시점인 것은 확실하다. 비록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후에 나타났던 이들에 대한 격하와 비판을 감안하여 자식으로 하여금 대를 잇도록 해서 그의 신정체제를 유지하는 준비를 20여년간 해오기는 했지만, 김일성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서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음으로 해서 북한은 지금까지 북한사회를 지배해왔던 고정적인 사고의 틀, 즉 어버이수령에 대한 충성을 빼놓고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기계적인 사고의 틀에서 해방되게 된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50년간 지속되어온 특정인에 대한 강요된 충성의 타성으로 인하여 심한 충격에 싸여 있지만 곧 인민들은 어버이수령이 없이도 해는 뜨며 세상은 굴러간다는 희한한 인식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과연 이제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상황에 작용할 변수들이 너무나 많아 이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이겠으나 일단 김정일이 김일성의 자리를 승계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김정일이 그의 망부가 누리고 행사할 수 있었던 지배체제를 쉽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김정일이 처한 대내외적인 여건이 너무나 좋지 않다. 이것은 52세의 김정일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김일성이 52세가 되던 1964년의 상황을 비교하면 쉽게 설명이 될 것이다.

 김일성은 해방후 귀국하여 그의 권력기반을 여러 권력계파의 수많은 정적들과의 치열한 권력투쟁과 피비린내나는 숙청을 통하여 1958년까지 일단 완성한 반면에, 1960년대에는 남한과 비교하여 두드러지게 차이나는 경제발전의 성과를 통하여 그의 지배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70년대에 들어와서 남한과의 실적경쟁에 있어서 그 차이가 역전되기 시작했으나 적어도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기까지는 동서냉전체제 속에서 사회주의권이 그런대로 건재했기 때문에 밖으로부터의 외풍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의 주체사상도 초기인 1950년대 후반에는 정적들을 제거하는 명분으로, 1960년대에는 격화되기 시작하는 중·소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느 한 쪽에 편들지 않음으로써 살아 남는 수단으로, 1970년대에는 중·소로부터 북한에 대한 경쟁적 지원을 유도하는 방법으로의 효율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내부적으로는 남한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그리고 외부적으로 북한의 체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국제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대드는 정적은 전혀 없지만 오랫동안 눈치보는 데에만 길들여졌기 때문에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속에 싸여 있어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불안할 것이다. 자신의 정통성도 주체사상을 계승한다는 것 외에는 없는데 그것도 내용면에서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산다」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고립주의에 불과하다.

 현시점에서 북한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선 김정일중심으로 정치권력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립주의적인 주체사상을 강조할 것이고 내부적 단합을 위한 긴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핵문제와 관련해서 일시적이나마 강경노선으로 다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진행중인 미·북한 고위급 3단계회담은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피차 무작정 미룰 수 없는 사안이므로 이 회담에 대해서 북한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가 내부적 안정도라든지 앞으로 김정일체제의 대내외적 정책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내부적 정치문제 때문에 설령 강경노선과 고립주의 쪽으로 선회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북한도 개혁과 개방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립은 체제유지에 임시적인 방편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상황은 한국동란이후 내우외환의 최대의 위기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위기의식 때문에 북한의 권력 엘리트들은 김정일체제의 공식화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신속히 이루려 하겠지만 사태의 진전에 따라 군부쿠데타나 루마니아의 경우와 비슷한 사태로의 전개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만일에 이러한 유혈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매우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남북한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북한이 안정될 때까지 시간을 주는 여유있는 태도와 사태를 주시하면서 앞으로의 남북한관계에 대비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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