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일성의 퇴장(장명수칼럼:1695)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일성의 퇴장(장명수칼럼:1695)

입력
1994.07.10 00:00
0 0

 김일성의 사망이 발표된 9일 낮12시, 그 소식을 전해듣는 사람마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고, 무의식 속에 뒤엉켜 있던 김일성에 대한 감정의 발로였다. 김일성이란 인물이 이렇듯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가라고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그렇다. 우리는 김일성이란 존재로부터, 그가 저지른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50년을 보냈다. 분단의 고착, 국가안보를 내세운 독재의 악순환, 맹목적 반공아래 획일화를 강요받은 국민의식, 용공조작과 흑백논리로 처단된 수많은 희생들…. 남한의 왜곡된 정치·경제·사회·문화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었다. 남한의 5천만이 그의 사망소식에 일제히 충격을 받고, 착잡한 심정에 빠지는 것은 그가 우리의 거대한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분단후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만나게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반기지 못했던 것은 김일성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갈등 때문이었다. 회담을 앞두고 온갖 예측이 춤출 때, 우리는 『김일성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는 신뢰할 만한 통일과업의 동반자인가』를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남북정상회담을 갖겠다』고 카터에게 약속했던 김일성을 판문점으로 오라고 하지 왜 평양과 서울을 회담장소로 제시했는가라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불만은 『김일성이 결국 서울에 안올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 아니고, 『김일성이 어떻게 감히 서울 땅을 밟을 수 있느냐』는 분노 때문이었다. 초기에 국가연주니 국기게양이니 하는 의전상의 문제들이 논의될 때도 『서울에 김일성을 불러놓고 인공기가 펄럭이는 것을 참을 수는 없다』고 펄쩍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결자해지라고 하지만, 민족의 내일을 위해 어제를 용서해야 한다고 하지만, 김일성을 화해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저항을 느끼는 것이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이제 그의 사망으로 6·25이전 세대들은 김일성이란 장애물없이 남북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동족을 향해 전쟁을 일으켜 3백만을 희생시켰던 전범, 50년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스스로 「신」의 지위에 올랐으나 끝내 인민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던 실패한 혁명가는 82세를 일기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김일성 이후」는 이제 남북의 공동과제가 됐다. 그의 사망이 통일을 성큼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인식, 그러나 「김일성 이후」가 더욱 골치아파질지도 모른다는 인식으로 우리 모두가 통일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