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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그 상처를…/김원일 소설가(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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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그 상처를…/김원일 소설가(특별기고)

입력
199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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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일성주석이 8일 새벽 2시에 82세로 사망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이 발표했다. 초강대국 미국조차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이상하고 위험한」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또 한번 세계 매스컴의 초점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이 소식은 조국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 남짓 앞두고 있으므로 너무도 극적인 상황변화이다. 돌연한 사태 앞에 북한도 애도의 조기를 걸고 아나운서는 수령의 사망을 절절한 목소리로 읊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남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북한의 향후 변화를 두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신적 위치」에서 현대사에 유래가 없는 50년 가까이 권력의 정상에서 군림했던 김일성주석의 사망과 관련해서 향후 북한의 동향은 누구도 명쾌하게 전망할 수가 없다. 오직 25일부터 사흘동안 약속된 정상회담이 열리기 어렵다는 사실만 명확해진 듯하다.

 김일성의 생애는 한반도 현대사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물려 있다.

 북한쪽에서 보는 그의 공적이야 어떻든, 그는 남북한 1백50여만명의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의 전범자였다. 50년 가까이 권력의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반대파를 숙청·유배시켰다. 그 절대적인 독재자가 그 예가 드물만큼 생전에 몰락을 체험하지 않고 심근경색으로 자연사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그도 한 길로 추구했던 주체사상에 입각한 조국통일을 생전에 달성하지 못했다.

 이제 북한의 권력승계가 어떻게 진행될는지 세계의 이목이 몰리고 있다. 그동안 김일성 주석은 부자세습이란 세계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김정일에게 자신의 절대권력을 이양하는 절차를 밟아왔다. 김정일은 군의 통수권을 이양받고, 제2인자로서 아버지로부터 착실한 정치적 수련을 받아왔다. 그러나 김일성은 최근 카터의 방북때 「앞으로 10년은 더 북한을 직접 통치할 것」이라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로 미뤄볼때 김일성 주석이 아들의 정치능력을 아직도 신빙하지 못했거나 권력이양이 완전무결하게 끝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듯도 하다. 외국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는 점이 그의 사인에 궁금증을 더해주지만, 폐쇄된 북한체제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종래 방침의 고수로 짐작된다. 아니면 권력승계작업에 따른 당과 군의 조정이 내적으로 필요하다는 시간벌기의 해석도 가능하다.

 앞으로의 북한은 권력층, 당과 군의 향배가 무엇보다도 주목된다. 자유주의자·모험주의자·호전주의자·소심자등 성격분석이 여러 갈래인 김정일이 과연 김일성 주석의 생전처럼 모든 통수권을 장악하고 일사불란하게 인민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는 점은 지금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정치현실이 80년대의 냉전시대가 아니므로 개방과 폐쇄의 갈림길에서 어느쪽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갈등이 당과 군 어느쪽에든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여지껏 유일한 동맹국으로 지원해온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밀어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또한 북한의 정치현실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하겠다. 북한 권력층이 의외로 빨리 과도기를 수습하여 새로운 남북한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문호를 개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한가지 문제는 북한 주민의 동향이다. 서구 공산주의 몰락이후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음은 북한을 탈출한 망명자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주지의 사실이다. 김일성 주석의 생존시 조직적인 감시망과 탄압에 억눌려 살아온 주민들이 권력승계의 과도기에 어떤 집단적 행동을 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인민군이 비상계엄으로 더욱 감시체제를 강화하겠지만, 화약고를 지키는 병사가 많다고 폭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처럼 이 모든 예상을 초월한 그 어떤 돌발사태가 북한 내부에서 폭발할는지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이야말로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쪽이 오히려 냉정·침착하게 북한의 향후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며 주시해야 할 것이다.

 전쟁만은 기필코 막아야 하고 북한을 자극할 흡수통일론을 자제해야 하고 북한을 한 동포요 형제로 포옹하며, 누가 권력을 승계하든 그쪽을 동등한 상대자로 대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국제사회의 한 형제로서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쪽은 늘 대화의 창구를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

 김일성의 사망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는 생자필멸의 이치대로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가들이 김일성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는 한반도 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가 사망했을지라도 우리는 「현대사의 상처」라는 말로도 그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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